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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死後2년>上.김정일 통치의 '그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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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수령님의 67년은 나의 97년이 돼야 한다.』 김정일(金正日)은 최근 당.정.군 핵심간부들에게 내년중 노동당 총비서와 국가주석직을 승계할 뜻을 밝혔다.김일성(金日成)이 67년 이른바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면서 권력기반을 다진 것처럼 앞으로1년 더 준비기간을 거쳐 공식집권해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가 되겠다는 집권프로그램이다.중앙통신도 4일 김일성 문상기간은 3년이며 김정일의 권력승계도 이후에나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그러나 김일성 사후 지난 2년간을 살펴보면 이마저 그리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같다.
「유훈통치」「군부통치」로 요약될 수 있는 지난 2년은 김정일에게 있어 악몽이었다.갑작스런 김일성의 죽음으로 뒤흔들린 북한체제는 좀처럼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는다.95년 새해 아침 김정일은 전체 주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피눈물 속에 94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아 힘차게 일해 나가자』고 강조했다.그러나 지난해 여름 북한전역을 휩쓴 대홍수는 꿈을 앗아갔다.내부수습이 불가능할 정도의 재앙을 두고 북한정권은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외국에 원조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정도로 경제는 피폐해졌고흐트러진 민심을 추스를 방법도 마련하지 못했다.「이밥에 고깃국」이라는 수령의 유훈은 한갖 희망일 따름이었다.
한편 김정일은 군부에 끌려다닐 뿐이라는 관측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군부에 대해 각별한 배려를 했다.실제로 김정일은 아직까지군최고사령관 자격으로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지난 2년간 공식활동의 대부분이 군부대 방문이나 군관련 행사로 채 워졌다.김정일의 이같은 행동은 끊임없이 권력이상설과 체제붕괴설을 불러일으켰다.김정일의 군부장악력이 지나치게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지적에도불구하고 김정일의 군부장악력은 김일성에 비해 취약할 수밖에 없다. 잇따라 발생한 북한주민의 탈북.망명사태는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졌다.외교관.과학자.항공기 조종사등 북한내 엘리트 세력의 탈출에 김정일은 가슴을 졸여야 했다.급기야 성혜림(成蕙琳)탈북설과 같은 「최고지도부를 걸고 드는 사건」까지 발생했다.지난 2월 평양주재 러시아 무역대표부에서 발생한 총기난동은 김정일의 53회 생일을 가장 우울한 가운데 치러지게 만들었다.
북한의 유고(有故)로 연기된 남북정상회담의 공은 여전히 북측에 있지만 권력승계를 미루고 있는 김정일로서는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총력을 기울인 대미(對美)외교를 비롯한 서방과의 관계개선도 「벼랑끝 외교」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돼야 했다.영원한 수령의 전사를 자처하던 이인모(李仁模)노인이 뉴욕을 방문하고 유해협상 타결로 미군유해발굴단이 북한지역을 누비는 상황에서 주민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그래서 4자회담에대한 회답은 여전히 「검토중」이다.
북한작가 김만영이 며칠전 발표한 서사시의 제목처럼 지금 평양의 시간은 멈춰있다.「수령에 대한 극진한 효성」을 이유로 권력승계를 미루고 있는 사실을 북한주민들이나 권력내부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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