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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 모녀살해' 항소심 판결 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이도행(李都行)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은 「확신을 가질 정도로 엄격한 증거가 없을 경우 피고인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형사재판의 대원칙을 재판부가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의미를지닌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제3자에 의한 범행일 수 없다는검찰측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객관적」으로 제3자의 범행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까지 검찰이 입증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정황증거가 충분하고 심증은 가질 수 있지만 현관 보조열쇠 하나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고 지문.혈흔등 유력한 유죄추정의 증거들이 현장에서 전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죄를단정하기는 곤란하다며 경찰 초동수사의 미흡함도 지적했다.
항소심으로는 드물게 30명의 증인을 법정에 부르고 2회의 검증까지 벌인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 대부분이 추측과 추리를 앞세웠고 각종 증거조사의 출발점이 된 「전제」자체에 무리가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선 재판과정중 가장 큰 쟁점이었던 崔씨 모녀 사망시간에 대해 재판부는 李씨 출근전인 오전7시 이전에 숨졌다는 부검및 감정의들의 소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밖에 한살배기 딸의 수유습관,부엌의 식기세척 상태 등도 말그대로 정황증거로만 받아들여졌다.
재판부는 범행동기부분에 대해서도 『검찰측 주장대로 崔씨의 불륜을 李씨가 알았다 하더라도 이 사실이 반드시 죽여야 하는 직접동기일 수는 없다』며 『이는 추측이나 추리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또 『거실의 커튼줄로 崔씨를 목졸라 죽였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서도 『격분해 처자를 죽이는 상태에서 李씨가 커튼줄세가닥중 침착하게 한가닥만을 풀어 범행에 사용한다는 것은 경험칙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증거가 불충분한 강력사건 수사에 대해 더욱 치밀한 초동수사와 과학적인 검증을 통한 증거확보를 요구하는의미도 갖는 셈이다.한편 무죄를 선고한 강완구 부장판사는 판결선고에 앞서 『진범이냐 아니냐의 단정은 전지전능 한 신(神)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다만 재판부는 헌법과 법률이 위임한대로 검찰이 제출한 증거가 유죄로 판단하기에 충분한지 여부를가려보자는 생각으로 재판에 임했다』고 말했다.
무죄가 선고되자 아버지 이재근(李載根.64)씨등 피고인 가족들은 『판사님 만세』를 부르며 환호성.
李씨는 『아들이 어릴 때부터 싸움 한번 안할 정도로 심성이 고와 무죄를 확신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진원.이철희.김정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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