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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습지는 급격한 기후변화 막는 ‘자연 스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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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우리나라가 올해 람사르 습지로 등록 신청한 오대산 질뫼늪, 강화도 매화마름, 제주 물장오리 오름(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제10차 람사르 당사국 총회가 10월 28일부터 경남 창원에서 열린다. [환경부 제공]

#사례1. 미국 찰스강 상류에는 훼손되지 않은 습지 3800㏊가 있다. 이 습지는 보스턴시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홍수로 강이 범람할 위기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홍수 피해 예방 기능만 연간 1700만 달러 가치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례2. 일본 효고현 도요오카시는 ‘논 새’인 황새를 복원해 연간 100만여 명의 관광객을 유치했다. 황새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논을 정비하고, 마을을 황새의 서식지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황새’ 로고가 달린 쌀이 인기를 끌면서 지역경제도 크게 좋아졌다.

위의 두 사례는 ‘생태계의 보물창고’인 습지의 기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환경 올림픽’으로 불리는 제10차 람사르 당사국 총회가 10월 28일~11월 4일 경남 창원에서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Healthy Wetlands, Healthy People)’을 주제로 열린다. 아시아에선 1993년 일본에 이어 두 번째다. 올해는 기후변화와 습지, 습지와 인간 건강, 습지와 도시화, 습지와 바이오연료, 아시아의 논 습지 보전과 식량안보 등 31개 주요 의제가 다뤄진다. 특히 한·일 두 나라가 발의한 ‘논 습지 결의안’이 채택될 예정이다.

◆람사르 협약=1971년 2월 2일 이란 람사르에서 채택한 국제환경협약이다. 물새 서식지로서의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체결됐다. 올 6월 현재 158개국이 가입했고 등록 습지는 1750곳이다. 우리나라는 97년 람사르협약에 가입했다.

지구 육지 표면의 6%가량이 습지다. 람사르 사무국에 따르면, 전 세계 습지 면적이 9억9900만~44억6200만㏊에 달한다. 습지는 연안습지, 내륙습지, 인공습지로 나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습지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브라질의 판타날 습지다. 알래스카나 캐나다에는 빙하가 후퇴할 때 생긴 많은 웅덩이에 물이 고여 만들어진 습지가 있다. 동남아시아 바다를 접한 나라의 해안에는 맹그로브 숲을 지닌 해안습지가 많다. 한국은 현재 우포늪, 용늪, 순천만, 신안장도, 물영아리, 두웅, 무제치늪, 무안갯벌 등 8곳이 등록돼 있다. 김재근 교수는 “면적은 적지만 희귀 생물이 많이 서식해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람사르 사무국에 논 습지인 강화도 길상면 초지마을의 매화마름 군락지, 오대산 질뫼늪·소황병산늪· 조개동늪, 제주 물장오리 오름을 등록 신청한 상태다.

◆습지의 기능=부산대 주기재 교수는 “습지는 동식물의 서식처로 생태학적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습지는 태풍, 해일 등 기상재해의 피해를 줄여줘 ‘자연의 방파제’로 불린다. 0.4㏊의 습지가 6000㎥의 물을 저장한다. 홍수 때는 물을 머금어 지하수를 보충하고 가뭄엔 물을 공급해 ‘자연의 스펀지’란 별명도 있다. 습지를 훼손하면 저장된 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돼 기후변화가 심해진다. 습지가 ‘온실가스 저장고’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바이오 연료 생산도 가능하다. 부들을 이용해 석유 대체에너지인 바이오 에탄올을 생산하는 기술이 한국 연구팀에 의해 세계 최초로 개발되기도 했다. 또 우포늪이나 순천만은 관광자원으로도 인기가 높다.

◆논 습지와 식량안보=icoop생활협동조합연합회 오항식 사무총장은 “국제 곡물가격이 폭등하면서 쌀 생산기지인 논의 가치가 높아졌다”며 “식량안보 차원에서 논 습지 보전은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일본 미야기현 가부쿠리늪은 논이 포함된 습지 중 세계 처음으로 람사르에 등록됐다. 가부쿠리늪은 겨울철새인 기러기들이 날아오면서 관광객이 크게 늘었고, 청정 농산물을 생산하는 이미지로 지역살림에 큰 보탬이 됐다. “환경이 곧 ‘돈’이고, 경쟁력임을 보여준 사례”라는 게 오 총장의 말이다. 서울대 김재근 교수는 “논이 1년 내내 물에 잠겨 있으면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메탄가스가 많이 생긴다”며 “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개발이냐, 보존이냐=전 세계적으로 가뭄과 매립장 건설로 인해 습지가 크게 줄고 있다. 개발론자들은 습지를 ‘버려진 땅’으로 여겨 경작지나 산업용지로 바꾸려고 한다. 반면 환경론자들은 습지 개발로 인한 손실이 훨씬 크다고 강조한다.

한국은 습지 보전 후진국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습지보전지역에 지정되면 재산권 행사가 제한되므로 주민들이 반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주기재 교수는 “미국처럼 습지를 공장 터로 쓰면 대체습지를 만드는 ‘습지은행’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길자 기자

※NIE면 제작에 참여하신 분=▶중앙일보 NIE 교사 연구위원: 김춘식(영일고), 성태모(능주고), 정성록(서진여고) ▶중앙일보 NIE 강사 연구위원: 권영갑, 심미향, 이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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