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재무부는 외환위기에 빠진 외국에는 대놓고 윽박지른다. 그러면서 자신의 금융위기는 손을 놓기 일쑤다. 도덕적 해이를 따지는 미 의회의 서슬 푸른 추궁이 겁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야누스’다. 그런 미 재무부가 그제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20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쏟아붓기로 했다. 국유화 조치가 시작된 것이다. “워낙 규모가 커 그냥 파산하면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야기할 수 있다.” 폴슨 재무장관은 세계 금융시장의 혼란을 의식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원래 미 재무부가 고집한 전략은 현상 유지였다. 슬쩍슬쩍 비상금을 대주면서 두 회사의 정상화를 기다렸다. 이런 노력에 중국이 결정타를 날렸다. 중국 은행들이 두 회사의 채권을 매각하면서 발을 빼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달 중국 은행들이 털어낸 채권만도 4조원을 넘었다. 이 뉴스가 나오자 버핏은 “게임은 끝났다”고 했다. 미 재무부도 해외자금의 탈출을 막으려면 다른 방도가 없었다.
천당과 지옥이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5년. 2003년 중국은 사스가 퍼지면서 해외 돈줄이 말랐다. 당황한 중국 공산당은 미 재무부의 눈치를 살핀 끝에 개혁 카드를 꺼내 들었다. 헌법을 바꿔 사유재산을 보장했다. 국유자산을 매각하고 용감하게 금융시장도 개방했다. 지금은 거꾸로다. 혼자서 세계 금융을 요리하던 미국이 처량한 신세다. 중국의 가공할 위력 앞에 눈치를 살피는 중이다. “지금은 파생금융상품이야말로 대량살상무기”라는 버핏의 이야기가 실감나게 다가온다. 세계 금융이 천 길 낭떠러지 위의 전쟁터나 다름없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