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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중년>10.생활잡지발행인 최일옥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소설가 최일옥(崔一玉.50)씨는 요즘 나이를 스무살쯤 거슬러산다.지난해 이맘때 20~30대 남성들을 위한 잡지 『HIM』을 창간,그 발행.편집인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뻘 되는 젊은 남자들의 신선한 감각을 사로잡아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지만 정작 본인은 『허옇게 센 머리카락을 잊고 살 만큼 재미가 쏠쏠하다』며 즐거운 표정이다.
더구나 오는 9월에는 미국 유수의 자동차 정보지 『MOTORTREND』한국어판까지 만들게 돼 崔씨의 이번 여름은 생애 최고로 바쁜 계절이 될 듯하다.
『남들은 일선에서 슬슬 물러날 나이에 비로소 일을 벌인 셈이지요.주위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해 중년주부들이 얼마나 자기 일을 원하고 있는지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30~40대에는 아이들 키우랴,한창 바쁜 남편 뒷바라지 하랴 정신이 없지만 이런저런 의무에서 벗어나 자기 시간을 갖게 되는 50대 여성이야말로 어떤 것이든 혼신의 힘을 쏟아부을 대상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
하지만 崔씨의 「충만한 50대」에도 구비구비 고갯길이 있었다.서울대 미학과 졸업후 『여성중앙』기자 3년,결혼,퇴사,두 아이 출산후 주부생활사에 재입사했지만 육아와 갑작스런 디스크 증상 때문에 1년만에 포기해야했던 것.『10여년을 철저한 전업주부로 살았어요.하지만 엄마와 아내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바깥 세상을 향한 제 안테나에는 항상 불이 들어와 있었습니다.』길지 않은 세월이었지만 인간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았던 기자로서의경험은 그를 자연스레 원고지 앞으로 끌 어당겼다.
불혹의 나이를 넘긴 87년 『문대식씨를 아십니까』라는 단편소설이 동서문학 신인상을 받음으로써 그는 마침내 작가 타이틀을 따냈다. 세상을 모두 얻은 것같은 기분도 잠깐.막 데뷔한 주부작가에게 관심을 기울여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이에 자극받아 88년에는 다시 『안개를 찾아서』라는 중편으로 제2회 KBS방송문학상을 받았고,92년에는 분단과 이산가족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어머니의 종』을 발표했다.
첫 직업이었던 잡지일로 되돌아온 것이 93년.자그마한 출판사「열린 세상」을 차린 것이 계기가 됐다.직원 대여섯명을 데리고마음에 드는 책만 만든다는 생각으로 일해오다 지난해 이제 우리사회에도 제대로 된 남성잡지가 필요하다는 생 각에 『HIM』을창간하게 된 것.40여명의 식구를 거느린 회사 대표로서 그가 믿는 것은 두 아이를 키운 엄마로서의 감각이다.고용주와 고용인이라는 개념보다 엄마처럼,자식처럼 탈(脫)권위의 경영스타일을 도입했더니 젊은 직원과 기자들이 스스럼없이 따라줘 뒤늦은 출발의 핸디캡을 메워주더라고.
『요즘 젊은 주부들은 거의 모두 잠재적인 커리어 우먼이지요.
하지만 많이 배우고 유복한 조건을 가진 사람일수록 치열한 노력보다 저절로 멍석이 펼쳐지기만을 기다리는 것같아 안타까워요.』다음 10년을 끊임없이 준비하고 도전해야만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하는 그에게는 여성지 『쉬즈』발행인으로 같은 길을 걷는 남편과 미국유학중인 1남1녀가 있다.
이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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