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왜 내미는 손 못잡고 머뭇거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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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참사를 당한 북한 용천 주민들에 대한 지원운동이 국내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고사리손에서 팔순 실향민에 이르기까지 뜨거운 동포애가 발휘되고 있다. 분단 이후 이처럼 일치단결된 대북 지원운동이 벌어진 것은 처음이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 보여준 우리 국민의 높은 동포애와 인도주의 정신은 통일 과정사에 기록될 만하다. 한 용천 출신 인사가 "53년 만에 만났던 동생들이 살아있어야 할 텐데…"하며 눈시울을 붉힌 대목은 북한 동포가 결국 같은 핏줄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이번 대북지원에는 이런 순수하고 애끊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대응은 우리의 이런 바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번과 같은 대규모 폭발사고에는 한시라도 빨리 대량의 의약품과 생필품이 현지로 보내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 대목을 소홀히 하고 있다. 우선 육로지원을 거부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남측의 대규모 구호차량이 북한 지역을 관통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북한 당국자들이 딱할 뿐이다. 북한 지역은 매우 특수한 곳을 제외하곤 이미 공개된 상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북측은 "충분한 의료진이 구성돼 이미 활동 중"이라는 이유로 우리의 병원선 파견을 거부했다. 북한의 현실을 뻔히 아는데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물론 남측의 의료진이 첨단장비를 갖고 직접 치료에 나설 때 야기될 체제부담을 염려한 듯싶다. 그러나 이번 사고가 어떤 사고인가.

남측의 이번 지원에는 어떤 '의도'도 들어있지 않다는 점을 북한 당국은 알아야 한다. 순수한 마음을 순수하게 받아줄 줄 아는 자세, 그것이 바로 북한이 그렇게 원하는 통일의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지원을 수용하는 데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기 바란다. 환자를 위한 병원선이든, 복구를 위한 불도저든, 무엇이든 불행을 당한 이웃을 도우려는 순수한 마음임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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