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미국 대선] 웃음 폭탄·사고 폭탄 … 매케인의 ‘유머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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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을 하던 중 잠시 소란이 일었다. 청중석에서 한 남성이 “매케인은 퇴역 군인을 위하지 않았다”라고 소리쳤다. 여성 2명도 따라 외쳤다. 그러자 공화당원들은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USA, USA”를 합창했다. 그걸 본 매케인은 연설을 중단하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소음과 잡음에 한눈 팔지 말라. 미국은 서로 소리 지르는 걸 원치 않는다. OK?”라고 했다. 이에 청중은 폭소를 터뜨린 다음 진정을 되찾았다.

“서로 고함치는 걸 중단하자”는 말은 매케인이 연설에서 강조한 ‘조국을 위한 초당적 협력’이란 메시지와 통하는 것이다. 매케인은 웅변조의 연설엔 능하지 않지만 돌발상황에 대한 대응 능력은 뛰어나다. 72세로 산전수전을 겪은 만큼 노련미가 있는 것이다. 그는 특히 유머를 즐긴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에게선 유머가 나온다.

“(사막이 많은) 애리조나에선 나무가 개를 쫓아다닌다. 물이 없기 때문에 (오줌이라도 받아 먹으려고) 그러는 것이다.” 애리조나 출신인 매케인이 언젠가 지역구를 소개할 때 쓴 유머다.

올봄 민주당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당 경선에서 접전을 벌이며 국민의 관심을 끌 때 매케인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민주당 경선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지만 (관심을 빼앗긴) 나로선 끔찍하다. 나는 (여러분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걸 싫어한다.”

그의 유머가 썰렁할 때도 많다. 유머가 지나쳐 비난을 자초한 경우도 있다. 올 7월 미국 담배가 이란으로 수출되는 양이 크게 늘었다는 보고서가 나오자 매케인은 “그게 이란인을 죽이는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28, 29년 동안 담배를 안 피운 사람으로서 농담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이란 외무부는 발끈해 비난 성명을 냈다.

매케인은 지난해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받자 보컬 그룹 비치 보이스의 팝송 ‘바버라 앤(Barbara Ann)’ 노랫가락의 첫머리인 ‘A Bar bar bar bar Barbar Ann’을 비슷한 발음의 ‘폭격하자 이란을(bomb bomb bomb bomb, bomb Iran)’이란 말로 바꿔 부른 다음 답변을 했다가 이란의 분노를 샀다.

매케인의 유머 중 최악으로 꼽히는 건 힐러리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딸 첼시에 관한 것이다. 그는 1998년 공화당 선거자금 모금행사장에서 “첼시가 왜 못생겼는지 아는가. 그건 아버지가 재닛 리노(클린턴 대통령 시절 최장수 여성 법무장관으로 미모가 없어 남성 같다는 얘길 들은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가 사과해야 했다.

매케인은 이라크전 이후 미국과 관계가 나빠진 프랑스를 겨냥, “프랑스인은 한때의 미모를 생각하며 외식에 초대받기를 원하나 요즘엔 그럴 만큼 미모가 안 되는 1940년대의 나이 든 여배우와 같다”고 했다. 그런 그에 대해 “여성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정치인”이라고 비난하는 여성이 아직도 꽤 있다고 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81년 1월~89년 1월)은 대선 때 유머를 적절히 잘 구사해 득표력을 올렸다. 84년 대선 후보 토론에서 민주당 월터 먼데일 후보가 “레이건의 고령이 걱정된다”고 하자 “나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 적수의 젊음과 무경험을 공격하진 않겠다”고 받아 넘겨 좋은 인상을 남겼다. 매케인도 유머를 선거운동의 중요한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때론 사고를 내는 그의 유머가 레이건처럼 득표에 도움될지는 불투명하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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