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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스페셜] 손기정 영전에도 메달 못 놓고 장례… “이게 말이 됩니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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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때 우리 민족의 혼을 일깨웠던 마라톤 영웅 고 손기정 선생(1912~2002)의 올림픽 금메달이 방치돼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한국인 최초로 얻은 금메달은 한국의 자존심이 담긴 '국보급'이란 점에서 장기간 방치가 논란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 손기정 친아들 손정인씨 단독 인터뷰

일본의 요코하마. 고 손기정 선생의 아들 정인(62)씨가 살고 있는 곳이다. 손기정 선생을 쏙 빼닮은 손 씨는 낡은 서류 가방에 아버지 사진과 자료들을 빽빽히 넣고 다니며 '아버지의 업적과 생애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그런 그가 강의 도중 가장 곤혹스럽게 받는 질문이 "금메달은 어디에 보관돼 있느냐"는 것이다.
 
손기정 금메달은 요코하마 손씨 집에도, 한국의 손기정기념재단, 국립박물관에도 없다. 1979년부터 육영재단에서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1996년부터 서울 능동 소재 육영재단이 노사간 분규에 휩싸이면서 지난 12년간 재단 한 사무실 금고에 방치돼 있다. 손씨는 "일본으로서도 국가 최초의 금메달이기에 소재를 궁금해 한다"며 "그 금메달이 장기간 방치돼 있으니 그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며 혀를 찼다.
 
손씨는 지난 2002년 아버지 작고 이후 육영재단 측에 금메달 국가 기증을 계속 요구해 왔지만 재단측 박근령 전 이사장은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재단측은 마치 우리가 금메달이 탐 나서 돌려달라는 것으로 오인하는 것 같은데, 국가에 재기증해 달라는 것인데도 거절하고 있다. 3년 전 메달 분실 의혹이 제기됐을 때도 재단측은 일반인에게 공개하겠고 약속했는데 아직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손씨는 손기정 금메달을 어둠 속에서 끄집어 내기 위해 발 벗고 나설 참이다. 그는 "재단측이 국가에 기증하지 않는다면 금메달 국가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손기정 금메달의 역사적 가치를 역설했다. "아버지 금메달은 한국과 일본인만 관심있는 것이 아니라 독일 등 전세계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하루 빨리 그 메달이 국가로 기증돼 재전시 공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지난 2002년 아버지가 작고했을 때 월계관과 금메달을 영정 앞에 모시고 싶었지만 박 전 이사장이 분실 우려로 거절했다"며 "이게 말이 되는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어이없어 했다.
 
금메달뿐 아니다. 그는 "월계관, 상장, 기념우표 등 가장 가치 있는 기념유품들이 12년째 어떻게 보관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이미 기증된 것이라 유족들에게 소유권은 없으나 제대로 전시하든지 아니면 그것은 손기정기념관에 넘겨 재전시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손기정 기념재단측도 손기정 선생의 기증품 국가 반환을 요구했다. 손기정 외손자인 재단 이준승 사무총장은 "할아버지는 금메달과 기념품을 국가에 기증한 것이지 특정 집단에 준 것이 아니다. 육영재단측에서 국가에 기증할 것으로 믿는다"라고 밝혔다. 이 총장은 "할아버지는 '내가 죽거든 금메달을 비롯한 마라톤 기념품을 한곳에 모아 나를 기억하게 해 달라'고 유언하셨다"고 호소했다.
 
건국대 최청락 교수(스포츠과학대학)는 "손기정 선생 금메달 방치는 역사를 방치한 것과 같다. 과거 없는 오늘이 없다. 금메달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볼 수 있게 해 주는 상징물이다. 금메달이 전 국민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령 이사장 "재단 정상화 되면 전시할 것이다"
 
육영재단은 1979년 5월 손기정 선생이 소장품을 이 재단 어린이회관에 기증함에 따라 최초의 금메달을 보관해왔다. 당시 '마라톤 금메달을 전시해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자'는 박정희 대통령의 취지에 손기정 선생이 동의했다. 그러나 1990년 11월 최태민 당시 육영재단 이사의 비리를 둘러싸고 박근혜·근령 자매가 운영권 다툼을 벌이면서 문제가 불거졌고 재단의 재정난으로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1996년부터 일반전시를 못하게 됐다는 것이 재단측의 설명이다.

현재 대법원 판결로 재단 자격을 상실한 상태인 박 전 이사장은 "우리도 금메달 가치를 잘 안다. 재단이 정상화되면 반드시 전시할 것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가 반납 주장에 대해서는 "사후 관리 소홀에 대해서는 미안하지만 유족들의 요구대로 그 메달을 국가에 재기증할 수는 없다"며 거절의사를 보였다.

요코하마=정병철 기자 [jb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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