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98년 금융시장 완전개방-조기 개방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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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98년말까지 외국인에게 금융산업이 완전히 개방된다.필요한 조치라는 주장도 있고,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비판도 있다.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올해 꼭 가입해야 하느냐는 지적도 있다.정부의 금융개방 스케줄을 둘러싼 찬반 양측의서로 엇갈린 견해를 들어 본다.
[편집자註] 지금 우리 금융부문에 필요한 것은 자질구레한 규제완화조치 정도가 아니라 「금융해방」이다.우리나라가 35년간 일제의 통치에 신음해 온 데 비교될 정도로 과거 30여년간의 고도성장기간 중 금융은 정책당국의 통제와 간섭에 억눌려 왔다.
지난 수년간의 산발적인 자유화조치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금융산업이 자유롭게 운신할 만한 단계에 와 있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금융부문은 낙후(落後)돼 있다.
선진국 금융에 비해서 보나 국내 실물부문의 발전에 비해서 보나 뒤떨어져 있다고 평가되는 것이다.그간 실물부문의 성장을 지원해 온 금융이 이제는 오히려 질곡(桎梏)으로 변해 간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부는 OECD 가입과 관련해 금융시장개방 일정을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98년말까지 증권사.은행의 설립을 외국인에게 전면 개방하고 2000년부터는 외국인 주식투자한도를 완전히 폐지한다는 것이다.
국내 금융기관들이 경쟁력을 갖추기도 전에 우수한 외국 금융기관과의 무한경쟁에 접어들게 된다면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우려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우리 금융산업의 잠재력과조기개방의 의미를 제대로 평가하고 음미해 볼 필 요가 있다고 본다. 금융부문은 무엇보다도 인력이 가장 중요한 경쟁요인이 되는데 우리나라 금융업계에는 법조계나 학계 등에 못지 않게 우수한 인재들이 집결해 있다.각종 규제가 이들의 발목을 잡았고 방만한 경영이 이들의 능력개발을 막아서 그렇지 제대로 풀 어주고기회만 준다면 짧은 기간 내에도 외국금융기관을 따라잡을 수 있는 잠재력이 우리에게는 있는 것이다.
금융을 어떻게 해방하고 경쟁력을 갖게 할 것인가.
이론적으로 최선의 방법은 정책당국이 솔선해 규제를 완화해 주는 한편 국내 금융기관들 또한 자발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을 경주해 가는 것이다.
이런 준비기간을 거친 다음 외국에 대해 단계적으로 금융시장을개방해 감으로써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킨다는 이른바 「선(先) 경쟁력강화 후(後) 시장개방」의 논리는 설득력이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에 비춰볼 때 현실성이 없다.슈퍼미니스트리로 통하는 금융당국의 막강한 힘과 관료주의전통,금융기관의 타성과 이해관계,기득권자의 자기보호능력 등을 감안할 때 이는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시점에서 시장개방을 앞당긴다는 충격요법은 국내 금융의 해방과 발전을 위한 돌파구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외국기관에 강요 못할 통제의 사슬을 국내금융에만 계속 채워 두지는 못하리라 보기 때문이다.
광복군이나 국내운동가들의 힘만으로 독립이 어려웠을 때 외세(外勢)의 도움으로 해방된 것이 큰 치욕이 아니듯 OECD가입을위한 것이든 외압에 의한 것이든 금융해방의 계기가 될 수만 있다면 개방시기를 몇 년 당기는 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노성태 제일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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