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인식이 퍼지면서 금융시장도 조금 진정됐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9.5원 떨어진 1129원에 마감됐다. 5일 만에 급등세가 꺾였다. 코스피지수는 0.46포인트 내린 1426.43으로 보합세였다. 코스닥지수는 12.07포인트(2.83%) 오른 438.44에 장을 마쳤다.
물론 위기의 징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경기는 바닥을 헤매고, 심리도 불안하다. 민간 소비는 6월에 -1%(전년 동월비)를 기록했다. 경상수지는 7월까지 78억 달러 적자다. 앞으로 전망도 밝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위기 징후는 늘 있어왔다. 날씨로 치면 궂은 날 정도란 게 금융계의 시각이다. 초특급 태풍이나 쓰나미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시장이 위기설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학습효과다. HMC투자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외환위기의 악몽이 공포를 키워 설익은 위기설을 확대 재생산한 측면이 있다”며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라고 말했다.
미숙한 정치적 판단도 위기설을 키웠다. 6월 이후 청와대 핵심 관계자,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등은 “국난적 상황”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다”며 위기설을 부추겼다. 증권가에선 미국산 쇠고기 촛불시위에 놀란 여권이 정국 전환용으로 위기설을 내세웠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뒤늦은 정부의 대응도 문제였다. 외국인이 대거 채권을 팔고 떠난다는 얘기가 나온 것은 올 5월이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위기설에 대해 본격 설명을 한 것은 지난달 27일이었다.
더 큰 이유로 ‘리더십에 대한 불신’을 꼽기도 한다. 이 센터장은 “외환위기 때 혼이 나서인지 (시장이나 정부가) 믿음을 주지 못하면 위기 의식이 눈덩이처럼 커지곤 한다”고 말했다. ‘경제 대통령’을 내세운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감이 위기설을 부풀렸다는 시각도 있다. 명지대 조동근 교수는 “경제 대통령이 경제를 망친다고 하면 가장 큰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현 정권에 반감을 가진 세력들이 위기설을 증폭시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흔히 ‘경제는 심리’라고 말한다.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면 진짜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심리가 꺾이면 가계는 소비를, 기업은 투자를 줄인다. 곧 돈이 안 돌고 생산이 줄고 일자리가 준다. 경제가 쪼그라든다. 진짜 위기가 오는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97년엔 밖(외국)에서 위기설을 퍼뜨렸지만 이번엔 안에서 더 위기를 얘기한다”며 “당시가 펀더멘털의 문제였다면 현재는 신뢰와 리더십의 문제”라고 말했다. 위기설에 대해 IMF는 이날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고 강조했다.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는 이날 일제히 한국 신용등급을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는 “일관된 정책으로 국민과 시장에 믿음을 주는 정부가 돼야 근거 없는 위기설을 잠재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