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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길잡이>57.연세大 서술형 모의문제풀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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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달 연세대가 97학년 논술 모의고사 문제(본지 5월30일자 17면 보도)를 공개하자 학생과 교사들은 『문제의도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내왔다.1번 논제(이에 대한 설명은 본지 6월13일자 참조)가 기존의 요약형 논제와 달리 복수의 지문을 제시한 것이어서 보다 높은 수준의 분석적인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큰 이유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가치의 관계」를 다룬 2번 서술형에서 예화(例話)를 논제의 쟁점과 연결시키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심지어 독자들 중에는 「태아가 상속권 등과 같은 법률적 권리를 지니 는 인격으로인정받을 수 있는가」를 이 논제의 쟁점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논제의 요구는 사회적 가치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르지 못할 때 야기될 수 있는 사회적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라는것이고 예화는 이 논제를 이해하는 단서로 제시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풍요를 가져다주는 것은 물론 자연을 보다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동시에 생태계의파괴,기술에 의한 인간 지배와 같은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이런 이유로 오늘날 과학기술은 사상가들의 문명비판의 중요한 대상이 되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포괄적 문명비판은 이 논제가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이 기존의 가치체계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거나 인간존엄성을 훼손하는 것과 같은반인륜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 이 논제의 초점이 맞춰져있다.최근 남녀 성비의 불균형을 가져온 낙태 문제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예화에서 제시된 「시험관 아기」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과거처럼 의학이나 생명공학이 발전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도덕적.법률적인격을 규정하는데 아무런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새로운 의학기술의 발전은 보다 많은 사람에게 건 강을 보장해준반면 과거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도덕적.법률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문제는 판단의 기준이 과학기술 자체에 의해 마련될 수 없다는점이다.낙태의 경우를 예를 들면 출생,체외생존능력,태동 등의 기준에 의해 그 허용여부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런 의학적 기준에 의해 결정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또 의학적 관점에서만 타인의 정자로 태어난 시험관 아기의 친권을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보다 중요한 것은 도덕적으로의미있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가치 사이의 갈등으로 야기되는 사회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 과학자들 사이에는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과학적 연구의 사회적 결과를 예측하고 과학적 연구의 방향을 평가.비판하는 과학자 집단의 노력이 그것이다.
다른 한편 과학기술이 인간적으로 발전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에대한 시민들의 민주적 통제가 주장되기도 한다.
김창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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