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칼럼>배수진 친 그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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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멤버십 신청을 승인하느냐,거절하느냐 여부를 결정할 시점을 겨우 며칠 앞두고 재정경제원은 98년 12월부터 은행업.증권업을 외국인에게 1백% 투자할수 있도록 홀딱 개방한다고 전격적으로 선포했다.
이미 대책이 준비되어 있던 다급함으로 보인다.
「부자클럽」으로 빗대어 부르는 OECD에의 가입 열망은 신분상승이라면 기를 쓰고 덤벼 온 이 시대 한국인의 속물 근성의 또 한번 발동일 수도 일부 있다.그러나 기왕 가입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면 OECD측이 요구하는 가입 조건을 최 저선에서 확실하게 들어 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OECD 가입을 반대하는 의견이 최근 많이 펼쳐졌다.너무 개방하면 실리를 지킬 수 없다는 걱정이 가입 반대 이유다.우리 실력 수준으로서는 선진 부자나라들과의 본격적 경쟁이아직 이르다는 것이다.
신분 상승 욕구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은둔적(隱遁的) 가치 때문이라면 몰라도,우리 실력이 아직 모자라서 개방을 늦추려고 한다는 것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 가야 한다는 경험법칙을 정면으로 무시하자는 논리다.뿐만 아니다.
호랑이를 잡을 수 있는 완력과 담력을 기르는 길은 호랑이 또는 그 이상으로 힘센 존재와 맞부딪뜨리는 수밖에 없다.이런 경우 아직 이르다는 말은 무기한 성립하는 까닭에 적기(適期)를 고르는데 유용한 기준이 될 수도 없다.
상대방과 동등한 조건 아래서라면 개방이 한국으로서는 폐쇄쪽보다 거의 언제나 유리하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얻을 것이 잃을 것보다는 많다는 계산과 우리가 상대방을 겁내는 것 이상으로 상대방이 우리를 겁내고 있다는 상황 판단에 근거한 자신감 말이다. 그런데 싸움이나 경쟁이 대체로 그렇듯이 OECD 가입이나 금융개방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자신과의 싸움 개시 선언이다.
문제는 다른 사람과의 경쟁을 전제로 하지 않을 때는 자신을 훈련하고 자신과 싸울 필요를 느낄 수 없는 것이 평범 한 사람,평범한 나라의 여유만만한 심정이란 점이다.
오랫동안 우리나라는 개방과 자유화를 요구해 오는 미국의 압력에 무릎을 꿇곤 해온 협상 관료의 궁여지책으로 나라 내부의 자유화가 진행되어 왔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우리 나라 관료 사회는 사(士)가 농(農).공(工).상(商) 을 지배해야옳다는 음모를 전통적으로 고수하고 있는데다 평등을 내 세우는 진보주의,새로운 폐쇄적 민족주의,근시적 보호무역주의의 강력한 성대(聲帶) 역학(力學)을 필요에 따라 번갈아 빌려 써 왔다.
19세기 말엽 이래 외세가 아니었던들 우리는 개방과 자유화에접근하지 못했을 것이다.그런데 미국의 압력은 산에서 우는 호랑이 울음 소리였다면 OECD 가입 신청은 처음으로 우리 스스로개방을 등뒤의 험수(險水)로 삼아 자유화를 이 루기 위해 친 배수진이었다고 보인다.
이 배수진을 착안하여 끈질기게 추진해 온,반(反)관료적 두뇌의 미학(美學)을 갖췄을 관리(官吏),쉽게 정체를 나타내지 않을 듯한 그 사람들 일단에게 존경을 보내고 싶다.
외국 사람에게 금융의 전체 스펙트럼을 개방하면 경쟁력이 약한우리나라 금융 산업의 운명은 지금대로 놓아 두었다가는 절망적이라는 것은 사실이다.이것을 이유로 외국에 개방을 더 늦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보다는,그렇기 때문에 국내 금융 산업의 근원적자유화를 급속히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 더 현실적이다.
배수진이란 것도 이기고 지는 것은 진법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달렸다.2천2백년전 한신(韓信)은 배수진을 쳐서 대승했다.군사들은 물러 나면 물에 빠져 죽을 판이니 목숨을 내 놓고 적과 싸웠던 것이다.그러나 4백년전 신립(申砬 )은 같은 배수진을 쳤으나 군사들이 뒤에는 달내 강물이고 앞에는 왜군이라당황만 하다가 강물에 빠져 죽고 왜군에게 찔려 죽고 몰살을 당했다. 초점은 은행이다.그리고 이미 그 해답은 나와 있다.은행경영진을 주주총회가 선임하게 하고 증권시장을 통하여 누구라도 얼마든지 은행 주식을 살 수 있게 하면 된다.그리고 새 은행 설립과 기존 은행의 합병등도 당분간 촉진할 만하다.책 임경영과경쟁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이것이 이기는 배수진이다.경영진 선임에 대하여 감독 기관이 자질과 능력을 평가하여 사후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좋을 것이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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