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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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콕 로빈의 그같은 폭력에 아리영은 반사적으로 저항했을 것이다. 뛰어난 미모(美貌) 탓이기는 했으나 아리영은 남자들의 「도전(挑戰)」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그때마다 맹렬히 「응전(應戰)」했다.도전과 응전의 결과는 언제나 아리영의 승리였다.아니,남자의 패배로 끝났다 해야 옳을 것이다.
그것은 결코 「승리」라 부를 수 없는 승리였다.잃은 것만 있는 승리.그것도 승리인가.남자친구는 그 일로 해서 아리영 곁을떠날 수밖에 없었고,그가 떠난 자리는 도리어 착잡한 패배감으로채워져 씁쓸하기만 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모두 괜찮았던 남자들이다.그들이 욕정을 이기지 못해 폭력행위로만 나오지 않았던들 아리영은 그들에게 호감 이상의 것을 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미스터 조를 포기한 상황에서 아리영은 어쩌면 그들 가운데 하나와 맺어질 수도 있었다. 콕 로빈은 슬기롭다.도전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으나 그는 늘 「신사」였다.아리영의 심리 무늬를 잘 읽고 있는 까닭이었다. 미스터 로빈 그린.「콕 로빈」은 그의 별명이다.그러나 아리영은 또 하나의 별명 「로빈 후드」쪽을 더 좋아했다.
18세기 말의 영국 작가 월터 스콧의 소설 『아이반호』에 등장하는 따뜻하고 용감한 기사 로빈 후드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반호』는 조역(助役)들을 매력있게 부각시킨 작품이다.주인공인 아이반호나 로이너 공주보다 「흑기사」라 불린 사자왕 리처드 1세라거나 유대인 처녀 레베카가 돋보였고 특히 「로빈 후드」라 불린 록슬리가 마음을 낚았다.야성속에 번뜩 이는 지성.
그 밸런스가 묘하게 섹시했다.
월터 스콧은 변호사였다.그가 『아이반호』처럼 집단간의 대결을다룬 작품을 잘 써낸 것은 인간과 인간,집단과 집단의 갈등을 냉철한 눈과 따스한 마음으로 지켜봐온 변호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우변호사 생각을 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서양속담 그대로 무엇을 생각해도 결국 우변호사로 이어지는 이 마음의 회로(回路)를 어찌하면좋단 말인가.
애써 단원 김홍도와 도슈사이 샤라쿠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샤라쿠의 판화 그림을 찍어냈다는 출판사 주인 쓰타야 주자부로(조屋重三郎)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아리영의 물음에 아자벨은 뜻밖의 대답을 했다.
『1750년 에도(江戶)의 유곽(遊廓) 요시하라(吉原)에서 태어나 쓰타야 리헤에(조屋理兵衛)라는 이의 양자가 됐다는데 확실한 신원은 알 수 없어요.이름은 원래 「가라마루」라 했지요.
한자로 「가리(珂里)」라 쓰고 「가라마루」라 읽혔 으니 이상하지 않아요?』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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