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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여당, 총선 이기려 매파 내세울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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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뉴스 분석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의 전격 사퇴 선언으로 일본 정국이 혼란에 휩싸였다. 1년 간격으로 두 총리가 돌연 사임하는 전무후무한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1년 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퇴한 데 이어 후쿠다 총리마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낙마한 데 대해 여당인 자민당의 집권 능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부자(父子) 총리’ ‘외교 전문가’로 화려하게 출발한 후쿠다 총리의 임기는 불운의 연속이었다. 야당이 참의원을 장악하고 있는 여소야대의 불안정한 정국을 이끌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민연금과 정치자금 문제가 잇따라 터져나왔고, 부활하던 일본 경제마저 주춤하기 시작했다. 당내에서는 그의 탁월한 능력과 부드럽고 신중한 성품이 위기의 자민당을 구해줄 것으로 믿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사태를 신속하게 판단하고 처리하는 쾌도난마(快刀亂麻) 식의 돌파력이 필요한 시점에 등장한 ‘신중거사(愼重居士·매사 조심스럽기로 유명한 후쿠다의 별칭)’는 국민들에게 답답하다는 인상만을 남겼다. 참의원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야당인 민주당의 비협조로 주요 정책들이 표류되고 지연됐다. 취임 초 60%에 육박하던 지지율은 20%대로 떨어져 끝내 되살아나지 못했다.

자민당은 당을 이끌고 중의원선거를 치를 새로운 지도자를 물색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여소야대 국회에서는 누가 새 총리에 취임해도 정치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번 사태를 일본 특유의 정치 시스템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국회는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제로 운영된다. 미국 식으로 하자면 중의원은 하원, 참의원은 상원에 해당한다. 실권은 총리 선출과 주요 법률 제정권을 가진 중의원에 집중돼 있다. 일본이 참의원이라는 상원을 둔 것은 중복 검토를 통해 법률 제정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지금처럼 중의원과 참의원을 모두 같은 당이 지배하지 않고, 서로 다른 정당이 나눠서 지배하는 경우다. 지금처럼 민주당이 참의원에서 반대하면 자민당은 다시 중의원에서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법안을 재의결해야 한다.

1998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내각의 경제 실정으로 자민당은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다. 하시모토 총리는 물러났고 후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정권은 다섯 달 동안 대부분의 법안을 야당과 협의 처리하는 ‘부분 연합’ 작전을 펴면서 버티다 이듬해 1월 자유·공명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했다.

자민당이 현 상황을 타개하는 유일한 방법은 중의원을 해산한 뒤 총선 승리를 통해 국민의 신임을 얻어 새 정치판을 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누가 자민당의 새 수장이 되든 대중을 의식한 이미지 정치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 자민당 내 매파가 다시 전면에 나설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당 중진들은 대중적 인기가 높은 아소 다로(麻生太郞) 간사장을 후임자로 내세울 기세다. 아소는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는 개인이 판단할 문제”라고 주장하는 보수·우익 인사다. 아시아 외교를 중시한 후쿠다 총리 체제에서 움츠리고 있던 보수·우파 정치인들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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