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토건국가식 발상부터 버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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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기를 부추기는 데 토목건설사업만큼 달콤한 건 없다. 막혔던 돈이 돌고 일시적이나마 일자리도 바로 늘어난다. 막대한 비용은 국채나 지방채를 발행해 뒤로 떠넘기면 된다. 한번 토건 의존증에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기 어렵다. 문제는 엄청난 후유증이다. 부동산 거품이 재앙을 낳고, 길게 보면 경기부양 효과도 의문이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 동안 토건 중심으로 105조 엔을 쏟아부었으나 실패했다. 적자국채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일본의 불황은 기업들의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기술개발을 통해 설비투자가 늘어나면서 끝이 났다.

이명박 대통령이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통해 일자리 늘리기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왕에 할 정부 공사라면 올해로 앞당기는 실질적 대책이 필요하다”고도 주문했다. 이는 사실상 부동산 경기를 전면적으로 부양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수도권 주택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재개발·재건축 규제에는 손대지 않겠다는 기존의 방침과 정반대다. 물론 건축경기가 서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경기 침체와 고용 악화를 풀어보려는 정부의 다급한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토건 위주의 경기부양은 수단과 방향이 모두 잘못됐다. 한마디로 헛다리를 짚는 것이다.

지금 건설경기 침체의 핵심은 대규모 미분양 아파트이고, 그 물량의 90%는 지방이다. 이는 전적으로 건설사들이 수요 예측을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다. 건설 호황에 편승해 주택보급률이 116%가 넘는 지방에다 집중적으로 아파트를 세웠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서울 도심의 재개발·재건축을 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금융권의 우려대로 부동산 시장이 곤두박질하면 과도한 주택담보대출이나 저축은행들의 부실대출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닥쳐오지도 않은 일에 미리부터 겁먹고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땅 파고 아파트 세울 때가 아니다. 멀리 보고 정보기술(IT)이나 관광·레저, 의료, 문화·예술 산업 같은 핵심 전략사업 발굴에 치중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도 새로운 국가적 수익창출 모델을 꿈꾸며 고단한 경기침체와 구조조정을 견뎌낼 수 있다. 그제 사상 최대의 감세안이 나오고 어제는 대통령이 부동산 경기부양을 거론했다. 그런데도 금융시장은 이틀 연속 대혼란에 빠졌다. 지금 정부에 필요한 것은 현란한 정책이 아니라 중심을 잡는 일이다. 시장의 신뢰를 얻어야 경제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 그 출발점은 토건국가식 발상부터 버리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