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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프스도 한국서 컸으면 장애 못 고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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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곽성민군(左)이 엄마 김송희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1년 만에 배치받은 부산예술중학교로 등교하고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1일 오전 8시30분 부산시 금정구 구서 1동의 한 아파트.

“엄마, 학교 언제 가나요?”

새 교복을 입은 곽성민(13)군의 마음은 벌써 학교에 가 있었다. 부산예술중학교 미술과 1학년 3반. 성민이가 3년간 공부할 학교다. 가방을 챙기며 성민이를 돕던 엄마 김송희(41)씨의 표정에도 걱정과 설렘이 겹친다.

성민이는 이날 장애(발달장애 2등급)를 가지고 예술중에 배치받은 최초의 학생이 됐다. 전국에 있는 5개 예술중은 성민이 같은 4만여 발달장애아에게는 ‘쳐다보지 못할 성’ 같은 곳이었다. 성민이가 이 학교에 오기까지는 1년간 엄마의 노력이 있었다.

성민이는 영화 ‘레인맨’의 주인공처럼 자폐증이 있지만 예술이나 수학 등 특정 분야에서 천재성을 보이는 서번트(Savant) 증세를 가졌다. 말과 대인관계는 좀 서툴지만 또래처럼 동방신기와 원더걸스를 좋아하는 중학교 1학년이다. 성민이는 유치원 때부터 서툰 말 대신 남다른 그림으로 자기를 표현했다. 초등학교 때는 전국미술대회에서 여러 번 상을 탔다. 올 6월에는 우리은행 미술대회에서 예술중에 다니는 아이들과 나란히 입선했다.

지난해 2월부터는 예술중 진학을 준비했지만 같은 해 10월 원서 접수가 안 된다는 학교 측의 통보를 받았다. “재능은 인정하지만 장애학생을 받아 본 적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림 속 세상은 가능성이 무한했지만 현실은 ‘장애’의 벽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장애아도 재능에 맞는 엘리트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

김씨는 배정받은 인근 중학교에 성민이를 보내고 동래교육청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보냈다. 전국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편지를 보내 호소하고 장애아를 키우는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실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장애아가 그림을 잘 그려봤자지’라는 차가운 시선과 싸웠다. 장애아가 일반 학교에 가는 것도 힘든데 예술중에 가는 건 욕심이 과한 것이라는 비난도 들었다.

◆화가의 꿈을 키운다=성민이를 예술중에 보내는 것을 포기하려던 김씨에게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들이 힘이 됐다. “성민이처럼 장애가 가볍고 엄마가 노력하는 아이마저 포기하면 장애아들의 교육에 희망이 없다”며 계속 노력하라고 격려해 준 것이다. 예술중 진학에 좌절한 지 9개월 만인 올 7월 10일. 김씨는 “성민이가 예술중 전학을 할 수 있다”는 교육청의 통보를 받았다.

성민이는 유치원 입학부터 거부당했지만 YMCA 아기 스포츠단에 들어가 또래들과 수영·스케이트를 배웠다. 부산교대 부설 초등학교에서 비장애아들과 함께한 6년은 갇혀 있던 세상에서 밖으로 나온 시간이었다. 지금은 웬만한 대화가 가능하고 국어·영어· 수학·사회 문제도 곧잘 풀어낼 정도다.

6학년 담임을 맡았던 황춘숙 교사는 “성민이와 함께 생활하며 아이들이 더불어 살며 배려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엄마 김씨는 그림이 성민이의 또 다른 언어가 될 수 있는 타고난 재능이라고 믿는다.

9월 1일. 성민이가 교실에 들어서자 선생님과 친구들도 마음을 열고 반겼다. 담임 최상일 교사는 “아이들도 성민이의 밝고 순수한 모습에 반했다”며 “장애와 상관없이 예술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이 성민이와 아이들을 하나가 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풍경과 사물, 파란 하늘 그리기를 좋아하는 성민이도 “화가의 꿈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 얼굴이 환해졌다.

“펠프스가 한국에 태어났다면 영원한 장애아로 남았겠죠. 모두 펠프스가 될 수는 없지만 이민 가지 않고도 장애아를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이날 성민이는 ‘화가’의 꿈을 향해 한발 더 다가섰다.

부산=김은하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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