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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문화체험>죽산국제예술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우리는 누구나 무용을 하며 살고 있다.신체를 움직여 공간속에나의 자리를 선택하고 주위와 조화를 유지하며 상대방과 대화한다.그것은 곧 안무이고,춤이고 나의 주위를 에워싼 관객과의 교감이다. 죽산의 웃는돌 공연무대에 도착해 차 한잔을 놓고 옹기종기 둘러앉은 참가자들은 남정호 무용원 교수의 오리엔테이션을 경청한다.그의 말은 계속된다.사람의 말은 곧잘 거짓 표현이기 쉬우나 팔.다리.고갯짓과 함께 몸을 쓰는 무용은 그중 원 초적이고 진실된 표현일 수 있다고.
그러한 무용중에서도 홍신자의 무용은 특이하다.
현대무용이란 장르 속에서도 한걸음 더 현대적인 춤을 추는 무용가….그는 잠수함속의 토끼다.그것은 머지않아 다가올 미래를 한 발자국 먼저 살면서 우리 동시대인에게 깨우침과 정신적 고양을 선사한다.용설저수지 제방에 바람이 분다.오방색 천조각이 높은 대나무 자락을 휘감는다.
어느덧 무리진 관객들을 끌어내는 소리가 제2회 죽산 국제예술제의 서막을 알리고 사람들은 경건한 걸음을 옮겨 설치미술가 안필연이 나누어주는 자그마 한 쪽박에다 그들의 근심을 꺼내어 담는다. 그 숱한 근심들이 흰 횟가루로 금을 그은 제방 한구석에던져지자 안필연이 주문과 함께 쪽박을 발로 부수어버린다.근심이깨어져나가는 걸 목격한 무리들이 서로 도와 그 숱한 쪽박들을 부수어버렸다.
텅빈 가슴이 된 무리에게 이번엔 희망 을 한줌씩 떼어준다.희망에 많이 굶주렸던 이들은 한줌을 더 받길 원했고 희망을 무진장 가지고 있는 안필연은 찰흙 시루에서 크게 한줌을 더 떼어주었다.오대환의 음악이 이 많은 희망들을 두개의 스피커를 통해 바람에 실어날린다.저수지 너 머 멀리있는 이들에게 나의 희망을알린 무리들은 이제사 내가 자랑스럽고 대견하다.희망을 가졌기에우리는 행복해졌다.
오후6시45분.서산에 해가 두뼘쯤 남았다.
햇빛이 눈에 부셔 모두가 실눈을 뜨고 바라보는 곳에 우주가 멈춘 굉음이 들렸다.그것은 적막이었고 그 없어진 온갖 소리가 아련한 산속에 나무로 변해 있었다.나미코의 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니 시작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렇게 있었다고 해야옳을 것같다.
산이 높아지면 해가 가라앉고 산이 가라앉으면 해가 떠올랐다.
아주 조금씩 산이 움직이고 아주 조금씩 해가 움직였다.
그리고는 드디어 아주 조금씩 내가 움직이기 시 작했다.
나의 움직임은 내가 딛고 선 땅과 허공에 춤추는 나미코,그리고 산과 해와 더불어 순간순간 자리이동을 경험하게 한다.
내가 산속에 있고 해가 내 밑에 있고 내가 자연을 감싸고 있었다. 일종의 포만감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연속의 이 포만감은 강제로 박탈되었다.처음에는 질서있게 서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무용수 주위로 다가가더니 아예 수십명이 에워싸는 바람에 나머지 관객들은 추한 군상들의 모습과 카메라맨들의 무례한 행태에 얼굴을 찌 푸릴 수밖에없었다. 오후8시.
저수지에서 공연되기로 했던 에이코와 코마 부부의 수중공연은 농번기를 맞아 저수지의 수위가 평소보다 2이상이나 내려간 관계로 부득이 레퍼토리를 바꿔 웃는돌 야외공연장에서 치러졌다.
여기에서 선보인 작품은 최근 중국과 대만 등지에서 순회공연을한 『바람(wind)』이라는 75뿐짜리 작품이었다.
3년전 홍신자가 웃는돌 단원들과 함께 산기슭을 고르고 소금을뿌려가며 바닥을 다질 때만 해도 죽산은 한갓 인적 드문 촌읍이었다.이제 두번째 국제예술제를 마련하면서 죽산은 이 나라의 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다.요즘들어 부쩍 예술계에 오 가는 말은 기업의 후원,지방자치와 지역문화,예술경영의 전문화다.우리는 웃는돌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이러한 말들의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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