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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 맘껏 활보 … 장병에 북 찬양 강연 52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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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간첩 원정화(34)는 숨어 지내며 활동하는 기존 간첩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10여 년 동안 지속된 대북 화해 무드와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와 중국 동포의 증가 등이 간첩의 모습도 변화시킨 것”이라고 풀이했다.

◇북한말 쓰며 공개적 활동=과거의 간첩은 대개 위조 신분증을 가지고 있었다. 북한 사투리는 쓰지 않도록 훈련을 받았다. 지령을 받을 때는 단파 라디오와 암호문 등을 활용했다.

그러나 원정화는 군 안보 강사와 대북 무역업자 등 공개적으로 활동했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요원과는 휴대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예전 간첩들이 사용했던 난수표와 단파 라디오·무전기 등은 아예 사용하지도 않았다. 대북무역을 한다는 이유로 중국에 있는 북한 보위부 요원과 간단한 암호를 섞어 수시로 공중전화나 휴대전화로 통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국경지대의 브로커를 통해 북한에 있는 가족과 한국에서 휴대전화로 통화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북한 사투리를 숨기지도 않았다. 탈북자로 위장했기 때문에 굳이 일부러 남한 표준어를 교육받을 필요도 없었다.

원정화 사건은 남파 간첩이 새로운 형태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잠수정을 타고 해안을 통해 잠입하지 않았다. 중국 국경을 넘은 뒤 중국 동포로 신분을 위장해 한국인과 결혼하는 방법으로 입국했다. 이후 탈북자라고 스스로 밝혀 북한 출신임을 숨기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또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현역군인을 소개해 달라고 한 뒤 군인들을 사귀었다. 52차례나 군 안보 강연에 나서 북한을 옹호하는 내용을 강연하기도 했다.

◇‘경제자립형 간첩’=원정화는 남한과 북한에서 동시에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그는 한국 정부로부터 지금까지 총 9000여만원의 탈북자 지원금을 받았다. 정착금 3700만원과 매달 생계비로 70만원씩을 받았다.

북한 보위부로부터도 7년 동안 공작금 3400만원을 받았다. 북측은 공작금 명목으로 북한산 남성 강장제도 줬다. 총 2400만원어치였다. 팔아서 활동 자금으로 쓰라는 것이었다.

원정화는 공작금을 스스로 벌기도 했다. 그는 북한의 수산물을 수입하는 무역업체를 운영했다. 공안 당국은 2006년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3억1000만원 상당의 거래를 한 것으로 확인했다. 그는 탈북자 지원금과 무역 대금으로 마련한 5500만원을 동생이 청진에서 운영하는 외화상점에 투자하기도 했다.

원정화는 간첩으로 활동한 7년 동안 중국을 14차례 다녀왔다. 북한에도 세 차례 드나들며 보위부 간부와 가족을 만났다. 버젓이 일본 여행도 3차례 했다. 한국 여권으로 얼마든지 중국과 일본을 드나들 수 있었다.

◇남파 목적도 이전과 달라=그의남파 공작원으로서의 임무도 과거 간첩과는 차이가 많았다. 군사 시설에 대한 정보 수집도 했지만 한국에서 반북 활동을 하는 탈북자들에 대한 정보 수집과 암살이 주요 목적이었다. 이는 반체제자 색출 업무를 맡고 있는 북한 보위부의 활동 영역이 탈북자의 이동 경로에 따라 중국과 한국으로 확대됐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는 남파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는 못했다. 핵심 남파 목적인 황장엽씨의 주소지 파악은 실패했다. 암살 지령 이행은 스스로 포기했다. 그는 북측에서 지령 실패를 이유로 자신을 살해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생활했다. 집에는 자물쇠를 4개나 설치해 놓았고, 3년 전부터는 신경안정제를 복용했다. 그는 수사에 상당히 협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관계자는 “원정화는 최근 여러 차례 자수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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