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퇴행적 조치” … 물러서지 않는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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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 불능화 조치 중단 선언에 강경 대응 입장을 명백히 했다. 토니 프래토 백악관 부대변인은 26일 “북한이 불능화 조치 재개를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연계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우리는 지금까지 북한에 핵신고 내역 검증에 관한 약속을 북한이 완수하면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할 것이라고 밝혀 왔다”고 말했다.

로버트 우드 국무부 부대변인도 이날 “북한의 조치는 6자회담 합의를 위반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며 퇴행적 조치”라며 “6자회담 참가국들과 협의하면서 향후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는 어렵다”며 “그동안 협상 과정에서 부침이 계속돼 왔지만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합의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먼저 핵 검증 의무를 이행해야만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할 수 있다는 기존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이날 “미국은 영변 핵시설에 대한 시료 채취와 테러지원국 해제를 연계하고 있다”며 “미국은 시료 채취만 이뤄지면 북한의 핵 개발 행적을 낱낱이 밝혀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워싱턴 외교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의 강경 대응은 북한이 핵 검증 요구를 최소한으로만 받아들인 채 테러지원국 해제를 얻어 내려는 의도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수법을 쓰고 있다고 판단하고 ‘북한에 더 이상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임기가 5개월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과 갈등을 감수하고서라도 내년 1월 차기 행정부 출범 전에 비핵화를 최대한 진전시키겠다는 전략인 것으로 풀이된다.

빅터 차(조지타운대 교수) 전 백악관 안전보장회의(NSC) 아태 담당 보좌관은 “북한은 테러지원국 해제를 강력히 원하고 있어 차기 미 행정부 출범까지 마냥 기다릴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며 “결국 부시 행정부와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도 북한의 핵 검증에 대해선 양보하기 어렵다”며 “그가 집권해도 내년 1월 말까지 현재의 답보 상황이 계속되면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 재단 사무총장도 “오바마는 외교안보에 문외한이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몽니에는 강경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며 “북한은 헛된 기대를 접고 부시 행정부와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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