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10년 만의 간첩 검거와 공안정국 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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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탈북을 위장한 여간첩이 8년여 동안 국내에서 활동해 오다 공안당국에 적발돼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다. 그동안 설(說)로만 나돌던 ‘위장 탈북 간첩’의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 여성은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에서 남파공작 교육을 정식으로 받았다. 겉으로는 남측과 교류·협력을 활발하게 진행하며 뒤편으로 간첩활동을 벌이는 데서 북한당국의 이중성을 확인한다. 이는 상호 신뢰를 크게 훼손하는 행위다. 현역 육군 장교가 북측 공작원에게 포섭당하고 간첩이 국군 장병들에게 안보교육을 시키는 사태는 최근 우리 사회, 특히 군 내부의 안보의식과 보안교육이 어느 수준인지 가늠케 해 충격적이다.

여간첩 A씨는 2001년 위장 탈북한 후 조선족으로 신분을 속여 남한 남자와 결혼해 국내에 안착한 뒤 북한의 보위부 지시대로 간첩으로 활동했다. 14차례 중국을 오가며 남한에서 수집한 정보를 북측에 직접 전달하거나 유·무선 통신으로 보고했다.

북한도 세 차례나 다녀왔다고 한다. 합법적인 신분과 수단을 활용해 국내에서 활동한 것이다. 그런데도 최근 10년 동안 적발된 간첩사건은 단 한 건뿐이었다. 느슨해진 공안당국의 수사·정보 역량과 국민들의 안보의식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이유다. 탈북자에 대한 관리 시스템도 정밀하게 다시 점검해야 한다. 1만2000여 명에 이르는 탈북자 가운데 A씨와 유사한 사람이 없으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정부는 이 사건을 포함한 최근의 공안사건들이 ‘신 공안정국 조성을 위한 정략적 움직임’이라는 야당의 지적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어제 경찰에 적발된 연세대 교수가 포함된 사노련 사건, 최근 경찰이 방통위에 “친북 좌파 게시물을 삭제해 달라”는 움직임 등이 헌법이 규정한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친북 좌파 세력을 우리 사회에서 몰아내겠다는 일념에서 혹시 무리한 정책 추진이나 섣부른 수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인권과 자유 등 기본권 자체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공연히 옳은 일을 하고도 공안정국이니 뭐니 하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안당국은 우선 이 사건 기소 단계에서 A씨의 간첩 혐의를 확실하게 입증해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대형 공안사건의 경우 수사 단계에서 그럴 듯하게 ‘포장 발표’해 국민과 여론을 들끓게 한 뒤 법원 판결 단계에서 범죄 혐의가 크게 축소되는 ‘왜곡 현상’이 그동안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제에 국가보안법 일부 조항에 대한 개정작업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이 법의 존치는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임의적인 해석과 적용이 가능한 일부 조항은 헌법 정신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 피의자에게 기계적으로 이 법을 적용하거나 순수한 연구활동까지 이 법으로 재단하는 것은 시대 변화나 사회 통념에 어긋난다. 대한민국 체제 유지를 위한 간첩 등의 수사와 사상의 자유 보장은 별도의 법으로 다뤄지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