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6자회담에 찬물 … 틀 깨지는 않을 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북한 외무성이 핵시설 불능화 작업을 중단하고 영변 핵시설 원상복구 조치를 고려하겠다고 선언해 북핵 폐기가 다시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사진은 6월 27일 북한이 핵 불능화 조치의 상징으로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모습. [교도통신=연합뉴스]

 북핵 6자회담 5주년을 하루 앞둔 26일 북한이 회담에 찬물을 끼얹었다.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 조치를 중단하고 원상회복 조치를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성명이 나온 시간은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논의하고 한국을 떠난 지 1시간40분 만이기도 하다.

북한의 성명은 미국이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조치를 무기 연기한 데 불만을 강하게 드러낸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6자회담 10·3 합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이미 작업을 끝낸 불능화 조치까지 원상대로 회복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검증 문제를 둘러싼 북·미 간 이견이 핵심 원인이다. 북한은 6월 26일 핵 프로그램 신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테러지원국 해제 방침을 의회에 통보한 지 45일 만인 8월 11일엔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됐어야 한다는 게 북한의 주장이다.

하지만 신고서 제출은 당연히 검증을 수반한다는 게 미국의 완고한 입장이다. 이 때문에 신고서 제출 당일부터 부시 대통령이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여러 차례 “테러지원국 해제 절차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검증 방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2단계 조치 이행을 담은 10·3 합의 문구에 검증 부분이 명확하지 않아 해석차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북·미를 포함한 6자회담 참가국들은 7월 베이징에서 한 차례 수석대표 회담을 하는 등 핵시설 검증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을 해 왔다. 미국은 이 자리에서 북한에 검증이행 계획서 초안을 제시했고 북한도 검증을 받아들이겠다는 원칙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구체적 방법과 검증 대상, 검증 주체에 있어서는 이견이 너무 컸다.

성 김 미 대북교섭 특사는 지난달 말 베이징을 방문했다가 북한 측 파트너를 만나지도 못한 채 귀국하고 말았다. 뉴욕 채널을 통해서도 접촉은 이뤄지고 있으나 “이견을 좁히기에는 너무 입장 차가 벌어져 있다”는 게 6자회담 소식통의 솔직한 전언이다.

문제는 북한의 의도가 과연 무엇이냐는 점이다. 성명서에 드러낸 대로 불능화 조치를 원상회복시킨다면 6자회담은 큰 위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북한이 6자회담 틀 자체를 깨려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긴장을 고조시킴으로써 검증 체제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기 위한 전술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테러지원국 해제를 확실히 해 달라는 북한의 메시지도 담긴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이 불능화 조치를 단행한 직후인 15일 회동한 한국 측 수석 대표인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미국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북한의 움직임에 과잉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6자회담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당장의 검증 문제는 물론 미국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 회담의 동력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또 대선 결과에 따라 차기 정권의 대북 정책 기조가 크게 바뀔 것이므로 북한은 회담 진전을 느리게 하면서 관망세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북한은 2004년 미 대선 때에도 회담을 1년 이상 표류시킨 전례가 있다.

예영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