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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 치닫는 그루지야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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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그루지야 사태로 러시아와 서방 세계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가 철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그루지야 내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자치공화국의 독립을 추진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압력 수위를 높이고 있다.

AP통신은 26일 “냉전 이후 최악의 관계”라고 평가했다. 그루지야 사태는 신냉전시대의 전초전 성격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러시아의 강공=러시아 상하 양원은 25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해 줄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 결의안은 미국의 딕 체니 부통령이 다음주 그루지야를 포함해 옛 소련권 국가인 우크라이나와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하겠다는 발표에 때맞춰 나왔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26일 흑해 연안 소치에서 열린 국가안보회의가 끝난 뒤 TV 연설을 통해 “두 자치공화국에 대한 독립을 러시아가 공식 인정한다는 명령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두 공화국의 반군 지도자들은 러시아의 독립 승인에 대해 “역사적 조치”라며 환호했다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이 전했다.

두 공화국이 독립한다면 결국 러시아로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 AP통신은 “독립 욕구에도 불구하고 이들 자치공화국 중 한 곳 또는 두 곳 모두 결국에는 러시아로 흡수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방의 압박=서방 세계는 즉각 대응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독립을 인정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발표했다. 로버트 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러시아는 그루지야의 영토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그루지야에 대한 지원도 본격화하고 있다. 24일 미 해군 구축함이 55t가량의 인도적 구호물자를 싣고 그루지야의 흑해 항구 바투미에 도착했다. 이번 주에 미국은 두 척의 배를 추가로 보내 구호물자를 전달할 예정이다.

유럽연합(EU)도 러시아 의회의 결의안 통과 직후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는 그루지야에 남아 있어야 한다며 즉각 반격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두 자치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한다면 그루지야의 영토 보전과 관련해 아주 어렵고 위태로운 상황이 촉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26일 러시아의 남오세티야 등의 독립 인정을 그루지야의 주권 침해라고 비난했다. 야프 더호프 스헤퍼르 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는 그루지야 영토를 인정한 유엔 결의안을 침해했는데 이 결의안은 러시아도 인정한 것이다”고 말했다.

◇“새로운 근심시대의 도래”=러시아 정치 전문가들은 “그루지야 사태는 ‘새로운 근심시대’(a new, worrying era)의 도래를 예고한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크렘린이 국경 밖에서 언제든지 군사력을 행사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고 밝혔다. 수퍼 강대국 미국과 러시아가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러시아는 미국 함정이 구호물자를 싣고 흑해로 들어온 것을 놓고 “미국이나 다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의 군함들이 흑해로 들어오는 것은 긴장을 더 고조시킬 뿐”이라고 비난했다.

드미트리 로고진 나토 주재 러시아 대사는 “현재 분위기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위기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며 “광기에 휩싸인 3류 정치인인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이 세계 열강들의 힘의 균형을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경덕 기자,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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