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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5일 개봉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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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참 우습다. 오랜만에 만난 두 남자가 중국집에서 낮술을 먹다 택시를 잡아타고 옛날 여자를 만나러 간다. 하룻밤 술기운에 묻어두면 족할 이런 치기가 과연 남 앞에 내보일 어엿한 얘깃감이 될까.

문제는 메가폰을 잡은 사람이 누구냐다. 홍상수 감독은 현재 시점 1박2일의 여정 속에 7년 전 과거까지 끄집어내, 87분간 먹물 든 속물인 두 남자의 실체를 자근자근 드러낸다.


선후배 사이인 헌준(왼쪽사진 (左).김태우)과 문호(왼쪽사진 (右).유지태)는 오랜만에 만나 둘의 첫사랑이었던 선화(성현아)를 찾아간다. 그들이 상처를 줬던 여인 선화는 7년만에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까.

다음달 12일 개막하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나가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여느 영화에서 보기 힘든 극사실적인 대사와 묘사로 등장인물의 외피를 발가벗긴다.

'새로운 한국영화'라는 찬사를 받은 데뷔작'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래로 그의 영화가 반복적으로 보여준 방식이다.

따라서 이 영화를 '새로운 홍상수영화'로 부르기는 어렵지만, 앞서 네 편의 영화에서 보여줬던 감독의 세계를 가장 집약적으로, 낭비 없이 보여준다는 평가는 가능하다. 이 영화로 홍감독을 처음 접하는 관객이라면 그의 영화세계가 어떤 것인지 절대 오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 선후배 사이인 두 남자, 헌준(김태우)과 문호(유지태)가 중국집 탁자를 두고 마주 앉은 장면처럼 이 영화는 정적인 구도가 많다. 그런데도 관객은 쫑긋 세운 귀를 좀체 늦출 수가 없다. 둘의 대화에서 하나 둘 흘러나오는 짙은 욕망 때문이다. 미대를 나와 유학가서 영화를 공부하고 온 헌준은 감독이 되겠다고 운을 떼는데, 이내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대학교수 자리가 있다면 절대 마다하지 않을 위인임을 제 입으로 실토한다.

미술대학 강사인 문호 역시 창작을 통한 성취가 아니라 전임교수 자리가 소망이라고 부르짖는 세속적인 인물이다. 주변부 지식인인 이들의 욕망은 결국 중심부에 진입하는 것에 모인다.

그리고 공통된, 더욱 강렬하고 집요한 욕망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선화(성현아)로 대표되는 '여자'다. 대학시절 선화와 사귀던 헌준이 유학을 간 사이, 문호가 빈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연애를 했다.

하지만 유학간 뒤로 연락을 끊어버린 헌준이나, 이미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린 문호가 원하는 것은 '여자'일뿐, 반드시 선화여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중국집에서 상대가 자리를 비운 사이 두 남자는 영화 만드는 사람이네, 미술대학 선생입네 하면서 여종업원에게 거의 같은 방식으로 수작을 건다. 둘의 사회적 지위는 오간 데 없고 욕망을 향해 주접스러워지는 남성들만 남는다.

이 영화는 실제로도 웃긴다. 왜소한 얼굴처럼 소심한 헌준이든, 한껏 불린 몸집대로 '욱'하는 면이 있는 문호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고 한껏 잔머리를 굴리거나 터무니없이 노골적인 대사를 입 밖에 내는 대목을 웃지 않고는 못 배긴다.

미국 유학파 출신에 대학 강단에도 섰던 홍감독의 이력을 안다면, 두 남자를 향한 조롱이 실은 '누워서 침 뱉기'라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누워서 침 뱉기에 끼기가 불쾌한 관객이라면, 두 남자와 거리를 두고 한바탕 웃어주는 편이 낫다.

이런 작심을 한다 해도 영화 내내 계속되는 두 남자의 주접스러운 작태의 적나라한 묘사가 나중에는 우습다 못해 징그러워질 수도 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는 제목의 주어는 '여자'이지만 이 영화의 여자, 선화는 그 속내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대학 시절 "남자들은 다 똑같애. 섹스만 하고 싶어해"하고 비명을 질렀던 그녀가 현재에도 여전히 '아낌없이 주는' 역할을 하는 건 왜일까. 더구나 '미래'에 대한 설명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점이 불만스럽더라도, 같은 여자에 대한 저마다의 환상과, 그 환상을 연장하려는 두 남자의 심리 묘사는 누구도 따라가기 힘들 만큼 세밀하다. 그동안 카메라의 움직임이 별로 없는 화면을 고집해온 감독이 이번에는 좌우 움직임을 많이 활용했다.

그때마다 화면 가장자리에 포착됐다 사라지는 인물과 사물들은 어김없이 요긴한 역할을 한다. 롱테이크(길게 찍기)가 유난히 많은데도 눈의 긴장을 풀지 못하게 하는 영화다. 18세 이상 관람가. 다음달 5일 개봉.

이후남 기자

*** 칸 영화제 초청 받은 홍상수 감독 "나쁠 건 없지만 賞은 기대안해"

-누구나 다 하는 무식한 질문 하나-이 영화의 메시지는 뭔가.

"나는 어떤 의도나 메시지를 정해놓고 이를 표현하기 위한 디테일(세부묘사)을 취사선택하는 게 아니다. 어떤 상황을 중심에 놓고 나를 열어두면 디테일이 나에게 온다. 그렇게 조각조각 모인 디테일이 인물이 되고, 영화가 된다. 보통 때는 기억력이 나쁜 편인데, 일할 때는 그런 디테일이 곧잘 떠오른다."

-홍감독에게 잘하는 무식한 질문 또 하나-영화 속 두 남자가 외모부터 감독을 많이 닮았는데.

"어떤 사람을 통째로 옮겨놓는 일은 안 한다. 너무 부담스럽다. 인물마다 모델이 서너명이라면 그 중의 하나는 나일 수도 있겠지만."

-무식하다해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마지막 질문-칸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초청된 소감은.

"영화 만드는 환경이 나아졌으면 좋겠다. 그동안 영화 만드는 돈보다 손님이 적게 들어서 이대로라면 앞으로는 디지털로 작업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상을 탈 것 같진 않다. 주제의식도 없는 영화인데. "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대해 말을 아끼는 편이다. "확실하게 말을 잘 못해서"라고 눙치지만 실은 기자의 이런저런 해석에"영화는 보는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진심같다. '보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게 홍상수 영화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모르고 보는 사람"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했다. 그의 의도대로 보려는 관객이라면 본문의 기사를 읽지 않았어야 한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은 그의 영화에 딱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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