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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항공, 국내 우회진출 시도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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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인천시가 싱가포르 타이거항공과 합작해 설립을 추진 중인 인천타이거항공을 둘러싸고 외국항공사 우회 진출 논란이 일고 있다. 국내 항공업계에서는 “인천타이거항공의 실질적인 지배자는 싱가포르 타이거항공”이라며 “외국 항공사가 편법으로 국내 항공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제주항공·진에어 등 국내 4개 저가항공사는 25일 인천타이거항공 설립을 허가하지 말라는 탄원서를 국토해양부에 제출했다. 인천시는 “싱가포르 지분이 49%에 불과해 지배적 사업자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맞서고 있다.

항공운송업 면허 허가권을 갖고 있는 국토해양부는 인천타이거항공의 설립에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시는 논란이 커지자 당초 9월 초로 잡았던 항공운송업 면허 신청을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편법 우회 진출 논란=인천타이거항공 설립은 2007년 11월 인천시와 싱가포르 타이거항공 간 협약이 체결되면서 본격화됐다. 올 1월에는 자본금 9억8000만원의 인천타이거항공 설립을 위한 특수목적법인이 만들어졌다. 인천시 측이 5억원, 타이거항공이 4억8000만원을 냈다. 항공사 법인(자본금 200억원) 지분은 인천시와 인천교통공사 등 범인천시가 51%를, 타이거항공이 49%를 부담하게 된다. 이 같은 지분율은 현행 항공법상 외국인이 50% 이상 지분을 소유한 경우 국내 항공사 설립을 제한하는 규정을 감안한 것이다.

그러나 국내 항공사들은 “타이거항공이 지분율 49%로 최대 단일 주주인 데다 인천시의 항공 관련 경험이 전무해 실질적인 항공사 운영은 싱가포르가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천시 담당 국장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인천시 의회에서 한 답변에서 “적자가 나도 싱가포르가 다 책임지기로 했다” “비행기 도입 비용도 전부 싱가포르가 부담한다”며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률 자문한 결과 이는 외국인이 사실상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항공법상 항공사 설립 불허 조건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한 국내 항공사 고위 관계자는 “싱가포르 자본이 우회적으로 국내에 항공사를 설립한 뒤 항공 자유화가 확대되고 있는 일본과 중국 노선까지 진출하려는 속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적으로 이런 식으로 항공시장을 외국 자본에 내준 사례가 없다”며 “특히 테마섹이라는 거대 투자 조직을 갖춘 싱가포르의 진출은 대단히 위협적”이라고 덧붙였다.

국토부 규정상 신생 항공사는 1년 동안 국내선을 우선 취항한 뒤 별다른 사고가 없으면 국제선을 운항할 수 있다. 국내 항공사들이 인천타이거항공에 대해 한목소리로 ‘반대’를 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인천시는 “범인천시의 지분율이 51%고 이사회 이사 5명 중 3명도 인천시가 추천 한다”고 맞서고 있다. 또 국내 대형항공사들 스스로 저가항공사를 설립하면서 인천시의 저가항공사 설립을 반대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유문옥 인천시 항만물류지원과 팀장은 “인천공항의 허브공항화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도 인천시가 항공사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며 “지분율대로 책임을 지는 구조로 싱가포르 측이 모든 걸 책임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 운송면허 발급에 부정적=정일영 국토부 항공철도국장은 25일 “일반적인 외자유치라기보다 인천시는 이름만 빌려주고 사실상 싱가포르 항공사를 그대로 들여오는 셈”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면허 발급은 어렵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가 최근 안상수 인천시장을 만나 항공사 설립에 대한 우려와 부정적 입장을 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관계자도 “현재 추진 과정은 항공법상 위반 소지가 높다”며 “ 이를 허가해 주는 것은 우리 항공시장을 고스란히 싱가포르에 열어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통연구원 김연명 박사는 “인천공항 허브화를 위해 저가항공사를 한다는 인천시의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설립 과정도 편법이나 불법 논란 소지가 커 보인다”고 지적했다.

강갑생 기자

◇싱가포르 타이거 항공=싱가포르 항공이 49%, 싱가포르 테마섹홀딩스가 11%의 지분을 가진 저가 항공사로 2004년 9월 첫 취항했다. 현재 12대의 항공기를 보유 중이며 태국 등 동남아 지역 9개국을 운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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