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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홀연히 재계은퇴 캐나다로 김현철 삼미前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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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난해 12월 어느날 갑자기 대기업 총수자리를 동생에게 물려주고 캐나다행 비행기에 오른 전 삼미(三美)그룹 회장 김현철(金顯哲.46)씨.그의 갑작스런 재계은퇴 선언은 여러모로 의외였다.회사가 어려운 고비를 넘겼을 뿐만 아니라 나이 로 봐서도 은퇴는커녕 한창 일할 참에 훌훌 털고 아예 해외로 떠나버렸으니말이다.그래서인지 국내에는 아직도 이런저런 뒷말이 있는 모양이다.그가 정말 은퇴한 거냐는 의심에서부터 혹시 형제 사이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 아닌지,재산관계 는 어찌 되는 건지 따위의 궁금증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는 것이다.金회장은 밴쿠버에서,기자는 뉴욕에서 날아가 만나기로 한 중간지점은 토론토였다.토론토 국제공항에 맞붙어 있는 셰라턴호텔에서 만난 그는 시종 싱글벙글하는 표정이었다.원래 건장한 체격인데다 가벼운 점퍼차림이라마치 외국원정 나온 운동선수 같은 모습이었다.밤도 늦었고 서로구면이므로 호텔 칵테일 라운지에서 만나자마자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金회장은 원래 언론에 잘.
金회장은 밴쿠버에서,기자는 뉴욕에서 날아가 만나기로 한 중간지점은 토론토였다.토론토 국제공항에 맞붙어 있는 셰라턴호텔에서만난 그의 표정은 시종 싱글벙글이다.원래 건장한 체격인데다 가벼운 점퍼차침이라 마 치 외국원정 나온 운동선수 같은 모습이었다.밤도 늦었고 서로 구면인터라 호텔 칵테일 라운지에서 만나자마자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金회장은 원래 언론에 잘 나서는 타입도 아니고 말수도 적은 편이라 얼마나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지 의문이었으나 그건 기우였다.표정부터가 밝았다.
-무슨 좋은 일이 많기에 그토록 희색 만면입니까.
『아,정말 요즘 나는 행복합니다.이제야 나와 내 가족을 위한실속있는 인생을 찾은 느낌이에요.아마 이런 기분은 직접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겁니다.』 -정말 은퇴한겁니까,아니면 캐나다에 와서 새 사업을 하고 있는 겁니까.어느 쪽인가요.
『은퇴쪽에 더 가깝다고 해야겠지요.삼미그룹 회장이라는 이름뿐아니라 그룹차원의 모든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뗐으니 분명히 국내 재계에서는 은퇴한 겁니다.그러나 캐나다에 와서 현지투자했던특수강회사 삼미아틀라스를 키우는데 전념하고 있 으니 밖에서 동생을 돕고 있다고 보면 되겠지요.』 -보통 사람들이 그걸 잘 믿겠습니까.은퇴를 선언해 놓고 여전히 실권을 틀어쥔 채 뒤에서실력행사를 하다가 얼마 안가 다시 복귀한 경우가 허다하지 않았습니까.더구나 이제 40대중반인데요.
『하기야 아주 가까운 선배 기업인까지도 나의 은퇴결정을 믿으려 하지 않더군요.정말 인사권까지 완전히 내놓았느냐는 질문을 술자리에서 여러차례 거듭하더라구요.자기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투였습니다.나를 잘 아는 사람까지도 이러니 다른 사람들이야 의심하는게 어쩌면 당연하겠지요.어쨌든 서울을 떠난 후 내가어떤 처신을 해왔는지는 서울의 삼미직원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수 있을 겁니다.신임회장 주변에서 전임회장이 완전히 없어져야 신임회장이 더 소신껏 잘합니다.』 근거없는 뜬소문에는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이 金회장(그룹회장직은 그만뒀지만 캐나다 현지법인 회장을 맡고 있어 그의 호칭은 여전히 회장이다)은 거침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신임회장인 동생이 알아서 잘 하고 있을뿐 아니라 설령 자기 생각과 다른 정책이나 인사(人事)를 한들일단 물러난 마당에 어쩌겠느냐는 것이다.
동생 김현배(金顯培)신임회장이 대기업을 끌고 나가기에는 너무젊지 않으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는 간단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버지 병환이 심각해지면서 78년부터 실질적으로 삼미의 경영을 넘겨받았던 셈인데 그때 내 나이가 29세였습니다.그런데 지금 김현배회장은 내일 모레면 마흔이 아닙니까.더구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회사를 맡았었지만 동생은 그동안 회사경영에 대해 충분한 훈련과 경험을 쌓아왔어요.그러니 최고경영자로서의 자격은 나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부족할게 없습니다.나는내 동생의 능력을 믿고 넘겨 줬고 넘겨 준 이상 절대 간섭하지않을 겁니다.』 -도대체 은퇴한 이유가 뭡니까.
『어느날 갑자기 내린 결정은 아니어요.쉰살까지만 하고는 은퇴해야겠다는 마음을 오래전부터 먹어 왔었는데 그 시기를 좀 앞당겼을 뿐입니다.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으나 아무리 기업이라 하더라도 한사람이 너무 오래 독점하면 좋지 않다는 생각을 늘 해왔었습니다.다행히 동생의 경영능력이 충분하다고 믿어져 은퇴결심이 쉬웠습니다.사실 따지고보면 요즘 세상에 기업을 동생에게 내마음대로 「넘겨준다」는 것부터가 엄격히 따지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일 수 있지요.나의 결정을 그대 로 받아들여준 회사 간부들이나 주주들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아무튼 우리집안 안에서 삼미를 대물림하는 것도 내 동생이 마지막이 될 겁니다.』 -그렇다해도 은퇴를 결심한 직접적인 동기가 있었을 것 아닙니까.쉰살에하려던 은퇴시기를 확 앞당겼던 구체적인 이유같은 것 말입니다.
『굳이 밝히자면 정치적인 이유를 들 수 있겠지요.과정이야 어찌 됐든간에 1년사이에 세번씩이나 검찰에 불려다녀보니까 그자리에 더 연연할 생각이 없어지더라고요.어떤 허탈감이라고나 할까요.이럴바에는 굳이 쉰살까지 더 기다릴 것 있느냐 당장 결행을 하자해서 결심했던 것입니다.』 무슨 질문을 해도 술술 이야기를풀어나가던 金회장도 이 대목에서는 여러차례 머뭇거렸다.자신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그동안에 얽혔던 정경(政經)관계에 대해 하고픈 말이 많았으련만 그냥 얼버무리는 선에서 넘어갔다.
-인생에 쉰살이 무슨 데드라인처럼 이야기 하는데 예순도 청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40대 중반인 지금 金회장 나이에 은퇴라는 단어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은퇴의 뜻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요.나로서는 삼미그룹 회장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생각해 보세요.제아무리 좋은 자리라도 20년을 계속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겨운 일입니까.한번 보라고요.2세 경영인중에 한국재계에서 나보 다 오래 한사람이 없어요.내 개인의 인생을 위해서나,조직을 위해서나 계속그 자리를 고수하는 것이 좋을게 없다고 판단했던 겁니다.』 金회장은 은퇴가 「선택의 문제」였음을 되풀이 강조하며 자신이 선택한 「은퇴생활」에 대해 말끝마다 흡족함을 표시했다.칵테일 잔을 기울이며 그는 최근들어 새삼스레 느껴보는 가족생활의 단란함을 소상하게 털어놓았다.비로소 남편 노릇,아빠 노릇을 해보니 나도 좋고 가족들도 그렇게 행복해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얼마전에 아들놈이 친구들을 불러 생일파티를 한다기에 초청장보내는 일부터 직접 나서서 도와줬더니 어찌나 좋아하던지.그걸 보고 역시 은퇴하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되새겼습니다.서울에서는 꿈도 못꿀 이야기였지요.』 ***삼일빌딩 팔때 가장 고통 -삼미그룹 회장시절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돌이켜 보면 어린 나이에 회사경영을 맡아 우여곡절의 연속이었습니다.회사가 어려움을 당해 아버지가 물려준 삼미의 심벌인 삼일빌딩을 팔고 방배동 사옥으로 이사할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그러나 특수강에 모든 것을 걸고 세계 최고 수준 의 회사로 끌어올리겠다는 일념으로 시종했었습니다.때로는 내 자신의 과욕이나 그릇된 판단 탓으로,때로는 주위여건 탓으로 몇차례 심각한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잘 극복해 낸 셈입니다.별 고민없이 동생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할 수 있었던 것도 회사가 이젠정상궤도에 들어섰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金회장은 건장한 외모와는 달리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다.그러나 특수강 이야기만 나오면 사람이 달라진다.정부가 업종전문화 정책을 내세우기 훨씬 전부터 그는 특수강 하나에 사운을 걸어왔다.이젠 특수강분야의 최고전문가가 됐다.
삼미그룹 회장직에서는 은퇴했어도 특수강사업을 떠난 것은 결코아니다.서울을 떠나 캐나다행을 결심했던 것도 삼미아틀라스를 통해 특수강에 전념하겠다는 뜻이다.
-삼미아틀라스는 잘돼 갑니까.한때는 그것 때문에 삼미가 곧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무성할 정도로 고전하지 않았습니까.
『89년 당시 2억달러짜리 해외투자라면 엄청난 모험이었던게 사실이지요.어쨌든 거금을 들여 인수했던 것이 특수강 불황 속에5년연속 적자를 기록했으니 그런 소문이 나돌만도 했지요.정말 어려웠습니다.어렵다는 소문이 나도니■ 거래은행이 도와주기는커녕무자비하게 자금회수까지 해대니 참 야속하더라고요.그러나 이젠 한고비를 넘겨 효자노릇을 하기 시작했습니다.94년부터 적자를 면해 지난해에는 이잣돈 다 물어가면서도 4천만달러 흑자를 냈어요.앞으로 전망도 매우 밝고요.』 -삼미특수강 증설때도 그렇고,캐나다 현지투자 때도 그렇고,삼미가 외곬으로 전력투구하는 과정에서 여러차례 금융위기에 몰리기도 하지 않았습니까.金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원래 그랬던 겁니까.
『안한다면 모를까 일단 하려면 구멍가게로는 안되는게 특수강 사업입니다.더구나 세계 굴지의 경쟁자들과 국제시장에서 어깨를 겨누려면 대규모 투자 없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은행빚을 얻어서라도 과감한 투자를 했던 것이지요.89년 캐나다 회사를 인수할 때도 자금부담 때문에 반대의견이 있었지만 내가 밀어붙였습니다.미국시장을 겨냥한다면 기술.시장.원료확보 측면에서 최선의 선택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입니다.2억달러 투자가 큰 돈이지만지금 그런 회사를 매입하려면 20억 달러를 주고도 힘듭니다.조만간 주식공개를 통해 은행빚을 없앨 수 있을 정도의 우량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으니까요.』 -삼미의 특수강 실력이 세계시장에서어느정도 위치입니까.
『현재 5대 안에는 들어갑니다.정상의 자리에 끌어올리는 것이최종목표지요.』 ***시니어 PGA입문 꿈 -아니,은퇴했다면서아직도 그런 사업욕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서울의 삼미특수강과 내가 캐나다에서 전념하고 있는 북미시장투자회사가 힘을 합치면 충분히 가능한 목표예요.그러나 내가 여기서 아무리 사업에 신경을 쓴다고 해도 서울생활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자유인」이지요.』 -자유인으로서의 생활설계는 어떤게 있습니까.
『50세 이상의 프로골퍼들이 참가하는 미국 시니어 PGA 입문에 도전하는 것이 꿈입니다.지금부터 열심히 연습해 되면 더할나위없이 좋고, 설령 안돼도 여러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목표를 정했어요.』 이 대목에서 金회장은 가장 신이 났다.시니어 PGA도전계획은 농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50세가 되기에는 아직 나이가 있으니 그동안 하체단련부터 시작해레슨프로 지도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의 시간표도 구상하고 있었다.운동에 소질 도 뛰어나고 워낙 좋아한다는 점으로 미루어 일을벌이긴 벌일 모양이다.프로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를 창단했던 것도 金회장 스스로가 야구를 워낙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의 김현배회장과는 가끔 전화통화를 한다.그러나 동기간의 안부나 개인적인 용건일 뿐 사업이야기는 일절 안한다고 했다.자기보다 더 잘할텐데 왜 나서서 간섭하겠느냐는 것이다.
다음날 오전까지 계속된 인터뷰를 마친후 토론토 외각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자장면 한그릇씩을 맛있게 먹고 헤어졌다.대기업 총수자리를 벗어난 해방감이 그토록 후련한 것인지,아마도 본인 이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작별인 사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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