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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유럽서의 독일 견제세력으로 영국선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영국을 방문중인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은 14일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베푼 버킹엄궁 오찬에서 쇠고기 요리를 들며 축배를들었다. 광우병(狂牛病)파동의 진원지로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영국의 왕실에서 프랑스 대통령이 영국민조차 꺼리는 쇠고기를 먹음으로써 영국에 대한 호의를 부각시키려는 제스처였다.
좋게 보면 유럽의 영원한 「맞수」,나쁘게 보면 「앙숙」인 프랑스와 영국이 최근 시라크 대통령의 국빈(國賓) 영국 방문을 계기로 이처럼 「밀월」(蜜月)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백년전쟁 등 먼 과거는 물론 2차대전후 최근까지도 양국은 줄곧 「가깝고도 먼 나라」로 지내왔다.영국이 63년과 67년 두차례나 유럽공동체(EC)가입을 신청했으나 무산된 이유는 드골의반대 때문이었다.유럽 통합이 영국이 소외된 채 프랑스-독일의 축으로 진행된 것도 영국을 따돌리려는 미테랑의 정치적 계산 때문이었다.
또 최근 광우병 파동때 전세계에서 제일 먼저 영국소의 수입을금지하며 선수를 친 나라가 프랑스일 정도로 두 나라의 관계는 보이지 않는 대결로 점철돼 왔다.
소원하던 양국 관계는 그러나 시라크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점차 호전됐다.
시라크는 미테랑보다 유럽통합에 소극적인데다 전임자와 달리 독일을 맹목적으로 선호하지도 않는다.
그는 유럽의회와 유럽집행위의 권한 확대를 통한 유럽연방주의를주장하는 독일에 반대하면서 생각이 같은 영국을 견제세력으로 끌어들일 계산을 하고 있다.반(反)유럽통합론이 거센 영국과 존 메이저 영국 총리로서는 오랜만에 구미에 맞는 ■ 대를 만난 셈이다. 이에 대한 화답으로 메이저 총리는 지난해 전세계의 비난속에 강행된 프랑스의 핵실험을 서방 지도자중 유일하게 지지했다. 영국은 그동안 프랑스-독일의 축에 끌려다니던 유럽통합 과정에서 영국-프랑스-독일의 삼각축을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고 있다.
양국 정부는 공개적으로 「양국의 유대가 2차대전이후 가장 돈독하다」고 말하고 있다.
84년 프랑수아 미테랑 전대통령 이후 프랑스 대통령으로는 12년만인 시라크 대통령의 영국 방문을 통해 양국이 묵은 앙금을해소하고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파리=고대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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