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태권도가 국회 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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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82일간의 18대 국회 원 구성 협상은 지루했던 시간만큼이나 무성한 뒷얘기를 남겼다. 네 가지 스토리가 특히 화제다.

첫째, 김형오 국회의장은 18일을 협상의 마감시한으로 못 박았지만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에겐 20일이 또 다른 데드라인이었다. 지난달 대한태권도협회장에 취임한 홍 원내대표는 이날 시작되는 올림픽 태권도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단을 격려하러 베이징(北京)에 가야 했다. 며칠 전 홍 원내대표는 작심한 듯 보좌진에 “20일 오전 비행기표를 예매하라”고 지시했다. 18일까지도 타결 전망이 불투명했던 협상이 출국 하루 전날 저녁에 마무리되자 정치권에선 “효자 종목 태권도가 국회를 살렸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둘째,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협상기간 내내 다른 일로 마음을 졸였다. 원 구성 협상이 꽉 막혀 있던 지난달 중순 부친과 부인이 늑막염과 당뇨합병증으로 잇따라 쓰러지는 ‘내우(內憂)’를 겪었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회복됐지만 한동안 원 원내대표는 하루 종일 회의가 이어지는 날에도 밤마다 병원을 찾아 간병을 해야 했다. 그의 한 측근은 “협상 기간 동안 사정이 알려지면 동료 의원들에게 걱정을 끼칠까 봐 입단속을 했었다”고 전했다.

셋째, 수읽기 싸움이 치열했던 만큼 상대 진영에 대한 평가도 많았다. 민주당 대표단에선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 특위의 한나라당 간사 자격으로 협상에 나선 장윤석 의원에 대한 평가가 그랬다. 장 의원은 법무부 검찰국장 출신의 재선이다. 19일 오전 협상에서 민주당이 제시한 최종안을 일독한 뒤 장 의원은 “절대 불가입니다”라고 단호한 말을 내뱉어 민주당 대표단을 당혹하게 했다. 전날 이미 상당한 의견 접근을 본 상태여서 민주당 측의 당혹감은 더했다. 서갑원 원내수석부대표는 “협상 진행 중 한 번도 장 의원이 흥분하거나 표정이 변하는 걸 본 적이 없다”며 “상대당 의원이지만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내공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긴 협상의 후유증으로 20일 침을 맞기도 했다.

넷째, 쇠고기 재협상과 미국 내 도축장에 대한 검사 및 승인권을 요구하며 초강경 주장을 펴 왔던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도 원 구성을 학수고대하긴 마찬가지였다. 타결 하루 전날 밤 협상 경과를 설명하러 찾아간 민주당 서갑원 부대표에게 강 대표는 “여러 가지 민생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원 구성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말해 조속한 타결을 은근히 기대했다고 한다. 가축법에 대한 강 대표의 입장은 여전히 강경하다. 19일 협상 결과가 발표되자 그는 “가축법 조항에 대한 특위 차원의 조정 여지를 남겨두지 않은 채 26일 개정안 처리를 약속한 것은 소수 의견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임장혁·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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