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시리즈 펴낸 소설가 김영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학 교수직, 진행 중이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접었다. 10여 년 정든 집도 정리했다. 안정된 일상에 마침표를 찍고 택한 것은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무작정 떠나는 여행.…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가 김영하의 리얼스토리다. 그에게 여행이란 자신의 작품 제목처럼 ‘나를 파괴할 권리’였을까.

지난 2일, 이탈리아로 떠났다가 석달 만에 돌아온 김영하(40)씨를 만났다. 그는 사흘 뒤 다시 캐나다 밴쿠버로 떠난다는 소식부터 전했다.

그의 무한도전(?)의 단초가 궁금했다. 작년 10월, 문득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나른하게 느껴지더란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상상력을 먹고 사는 작가에게 안정된 일상이란 메마름을 넘어 불안함이었겠다 싶다. 단순히 여행객이 아니라 집시가 되어 지구마을 곳곳, 끝없는 유랑을 작심했다. 낯선 환경과 사람이 그의 글쓰기에 뮤즈(Mus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학예 여신)가 돼주리라 확신하며….

‘새로운 소설’을 찾기 위한 떠남. 그는 또박또박 자신의 발자취를 기록했다. 그리곤 책으로 엮어냈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여행서적들 속에 소설가의 ‘그것’이라고 뭐 특별할 게 있을까. 분명한 건 직접 찍은 사진·소설·에세이로 짜인 여행담이 여느 여행서적과는 느낌이 다르다는 점이다. 신세대의 톡 튀는 감각을 만족시키는 이야깃꾼답다. 그는 8개 도시에서의 족적을 ‘여행자’ 시리즈로 엮기로 했다. 지난 7월 펴낸 ‘여행자-도쿄 편’은 하이델베르크 편에 이은 두 번째 성과다.

불편하게 남긴 기록

성능 좋고 편한 디지털 카메라가 각광받는 요즘, 김씨는 아날로그 카메라로 세상을 포착한다. 그는 “불편한 카메라는 피사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도시와 가장 어울리는 카메라를 선택해 여행에 나선다는 그가 도쿄에 들고 갔던 건 롤라이 35. 작고, 셔터 소리도 거의 없고, 플래시도 번쩍이지 않아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도쿄사람들을 담아내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맛집이나 상점을 메모하지 않는다. 대신 방문한 도시에 스스로 의문을 던지고 나름의 답을 기록한다. 여행자로서 단순히 현지의 문화를 즐기는 것을 넘어 각 나라의 생활방식을 포용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따라서 ‘여행자’에 실린 에세이는 눈으로 따라가는 거리의 풍경보다는 가슴으로 이해하는 진경(眞景)이 주를 이룬다.

“허름한 호텔방에 내가 죽어 있고, 한 여자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여행자- 하이델베르크 편’에 실린 단편소설은 이런 착상에서 비롯됐다. 각 도시를 배경으로 쓴 소설은 구상부터 완성까지 모두 그 도시에서 이루어진다. 대표작 중 하나인 ‘검은꽃’ 역시 소설의 배경인 멕시코에서 썼다. “생동감 있는 글을 가장 빨리 쓰는 방법은 현지에서 작업하는 것”이 그의 지론.

‘여행자’의 마지막 도시는 서울

캐나다에서 1년간 머무르는 것도 단지 소설을 쓰고자 함이다. 도시를 거닐며 사진을 찍고, 카페에 앉아 소설을 구상하거나 여행 기록을 남기는 것이 전부다. 그밖에 예측 불가능한 경험은 무작정 떠난 여행의 묘미이자 덤이다.

“시리즈 세 번째 도시는 미정이지만 마지막 도시는 서울”이라는 김씨. 그의 눈에 비칠 서울은 ‘검은 꽃’일까 ‘빛의 제국’일까.

김영하의 여행법칙

1. 도시의 분위기와 문화를 가까이 접하기 위해 숙소는 반드시 도심에 잡는다.
2. 그 도시의 음식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현지인들로 왁자지껄한 음식점을 선택한다.
3. 도시를 색다른 느낌으로 접하기 위해 머무르고 있는 장소가 등장하는 책을 읽는다.

프리미엄 이유림 기자
사진= 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