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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아리영은 경주박물관에서 이상한 항아리를 본 적이 있다.「토우장식 장경호(土偶裝飾長頸壺)」.5세기나 6세기의 것으로 보이는신라 토기다.
「높이 34.2㎝,입지름 22.2㎝」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별로 크지 않아서 항아리라기보다 아담한 단지 같다.씨앗을 담았던 것일까.
이름 그대로 긴 항아리 목 아래 여러가지 모양새의 토우(土偶)가 둘러쳐져있다.개구리 다리를 문 뱀,물고기,새 등의 동물 외에 거문고 비슷한 악기를 타는 여자 인형도 보였다.임신한 여인이었다.그 옆엔 성애행위를 하려는 남녀의 모습이 있었다.
아리영을 놀라게 한 것은 그들의 체위였다.알몸으로 다리를 구부려 엎드린 여자 뒤에 역시 알몸의 남자가 몸가락을 돋운 채 서있는 것이다.작은 고추와 같은 그 생김새가 애교스럽고,남자를뒤돌아보며 웃고 있는 여자의 표정도 천진스러웠다 .
새끼 손가락 만큼도 못되는 흙인형이 풍기고 있는 밝고 청결한분위기도 신기했으나 대담한 그 체위가 놀라웠다.
토우장식 장경호를 본 적이 있느냐고 우변호사가 물은 것은 하코네(箱根)에서의 일이다.그 자세를 본떴다.그러나 제대로 되지않았다.아리영의 몸 틈새가 앞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18세기의 일본 우키요에(浮世繪) 화가 니시카와 스케 노부(西川祐信)는 여인의 육신을 해부도(解剖圖)처럼 그려서 발표했다.아마도일본 최초의 해부도였을 것이다.
그는 으뜸으로 꼽히는 여인의 육체적 조건도 그림 그려 다음과같이 서술하였다.
『…윗가슴이 넓지 않으며,허리는 굵지 않으며,둔부는 약간 퍼진 듯하되 크지 않고 통통하며,두다리의 가름새가 위로 치켜져 있으며,따라서 몸 틈새도 앞쪽에 위치하며….』 그것은 마치 아리영의 몸매를 표현한 말 같았다.중국의 고대 의학 책에도 몸 틈새가 앞쪽에 자리한 여인을 으뜸으로 꼽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것인지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아무도 그것을 지적하거나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우장식 장경호의 여인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보통 육신」인 듯했으나 행복해 보였다.
미모와 소위 「상품(上品)」의 육신을 가진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그리운 이는 단 하나 뿐인데 머나먼 떠돌이 별처럼 손닿지않는 곳에 있다.「남자가 백(百)…」이라던 무당 말도 헛말이다. 「도요토미가 비장 호피도」의 네 남녀처럼 야하게 놀아날 생각은 꿈에도 없고 우변호사 외의 남자에게 몸을 맡길 용기도 없었다. 『내일 밤 벚꽃 구경이나 갑시다.』 어두운 아리영의 얼굴을 살피며 콕 로빈이 제의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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