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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학교가 재미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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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레야, 너도 우리 학교가 재미있다는 얘기 듣고 왔니?

우리 학교는 경기도랑 강원도 사이에 끼인 작은 산골에 있어요. 학교 앞에는 수퍼마켓이랑 중국집.미장원이 있고요, 피아노 학원이랑 공부 가르치는 학원도 하나씩 있어요. 원래 소화제랑 활명수를 파는 약방이 딱 한 곳 있었는데, 얼마 전 주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문을 닫았어요. 그리고 나머지는 산이랑 논이랑 밭이랑 길이랑 나무랑 풀이랑 꽃이에요.

우리 마을은 한강 상류에 있어서 공장을 짓지 못한대요. 그래서 부모님이 돈을 버느라 외지로 떠나 농사짓는 할아버지.할머니랑만 사는 친구들도 많아요. 그래도 우리 학교 학생들은 모두 140명이나 돼요. 지난해만 해도 100명 정도밖에 없었는데 올해 부안초등학교랑 합쳐졌거든요. 옛날엔 친구들이 부모님을 따라 도시로 가는 바람에 학생이 줄기만 했대요. 요즘엔 우리 학교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양평 읍내랑 서울서 이사 온 친구도 있어요. 친구가 많이 늘어서 너무 신나요.

# 우리는 튼튼한 어린이랍니다

우리 마을은 산골짜기라 TV도, 라디오도 잘 안 나와요. 집에 컴퓨터가 있는 애들도 거의 없어요. 그래도 별로 심심하지 않아요. 학교에 가면 컴퓨터도 있고, 바이올린도 있고, 장구랑 북도 있고 신나는 일이 잔뜩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일찍 학교에 가면 교실에 가방을 던져놓고 운동장으로 나가요. 자전거를 타고 운동장을 뺑뺑 돌기도 하고요, 체육실에 있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꺼내 타기도 해요. 수업 전에는 전교생이 모여 운동장을 6~7바퀴씩 뛰어요. 교장 선생님께선 늘 "건강이 최고"라고 말씀하시거든요. 지난해엔 우리 학교가 처음으로 양평군 종합체육대회에서 우승했어요. 선생님들은 몇 년 동안 아침마다 달리기를 한 덕분이래요. 다른 학교들도 조그마한 우리 학교가 우승하니까 모두 놀랐죠. 매일 달리기를 해 천식이 나은 오빠도 있었대요. 그렇다고 체육만 잘하는 건 아니에요. 수업 시간엔 공부도 열심히 해요. 큰 도시 학교에서 오신 선생님들도 우리가 "수업시간에 말 잘듣고 집중을 잘한다"고 칭찬하시거든요. 우리 학교 성적이 양평군에서는 중상위권이래요.

#특기 적성 수업으로 꿈을 키워요

양평군 학생예능대회에서도 사물놀이랑 풍물로 우승했어요. 세계풍물대회에도 나가 2등을 했죠. 사물놀이 실력은 '특기 적성 교육'에서 갈고 닦은 거예요. 우리 학교에서는 수업이 끝나면 전교생이 특기 적성 교육을 받아요. 한 사람이 여섯 가지씩 배워요. 사물놀이.민요.태권도는 필수 과목이고, 가야금.모둠북.바이올린.미술.스포츠 댄스.골프.기타.영어.컴퓨터.민요.인라인스케이트 중에서 세 가지를 더 고를 수 있어요. 음악실에는 큰 북이랑 장구랑 소고.상모가 잔뜩 있고 예절실에는 가야금이 있어요. 어떤 친구들은 쉬는 시간에도 연습을 해요. 운동장엔 골프 연습장도 있어요.

옛날에는 한달에 2만원만 받고 다 가르쳐주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많이 올라 3만원을 내요. 더 비싸지면 부모님들 어깨도 무거워질 것 같아요. 그런데 서울에서 전학 온 친구들은 한 과목에 3만원씩 내는 줄 알았대요.

특기 적성 선생님들도 모두 대단한 분이에요. 사물놀이를 가르쳐주시는 맹두형 선생님은 서울에서 사물놀이학원을 운영하고 계세요.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자격증이 있대요. 영어를 가르쳐주시는 장위위 선생님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오신 중국 분이세요.

맹선생님처럼 8년 전부터 우리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계신 분도 있지만 다른 선생님들은 가끔 바뀌기도 해요. 지난번에는 골프 선생님이랑 민요 선생님이 그만 두셔서 다들 눈물로 보내드렸어요.

실력 있는 친구들도 정말 많아요. 전교회장인 6학년 소정이는 민요를 아주 잘 불러요. 장구도 잘 치고 가야금도 잘 해요. 소정이는 가수가 되고 싶대요. 4학년 승희도 2학년 때부터 배우기 시작한 스포츠댄스에 푹 빠졌어요. 차차차랑 자이브를 잘 춰서 양평군 예능대회에 나가 상도 받았어요. 승희는 원래 수퍼모델이 되고 싶었는데 이제 댄스 스포츠 강사도 하고 싶대요. 4학년 민경이랑 2학년 유리도 댄스 스포츠 강사가 꿈이에요.

6학년 재영이는 1~2년 전만 해도 꿈이 없었는데 모둠북을 배우고 나서 국악인이 되고 싶어졌대요. 집에 가면 북이 없으니까 젓가락으로 벽이나 의자를 치다가 혼나기도 한다나요. 재영이가 북을 다루는 실력을 보면 정말 놀라워요. 지난 여름방학 때는 강사 선생님이 서울에 올라와 연습하라고 하라고 할 정도이니까요. 하지만 못갔대요. 데려다 줄 사람이 없거든요. 우리 학교를 졸업한 안상호 오빠는요, 이번에 수원대에 국악과에 합격했어요. 우리 학교에서 배운 사물놀이 덕분에 꿈을 이룬 거래요.

#학교에는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요

특기 적성 수업에서 배우지 않은 재능도 뽐낼 기회가 많아요. 토요일마다 행사가 열리거든요. 글짓기.동화구연.연극.댄스 대회.칭찬대회.엉뚱한 생각 대회.물로켓 발사 대회…. 너무 종류가 많아 말하기도 어려워요. 여기서 잘 하면 상을 받아요. 3, 4월에만 벌써 100명은 받았을걸요. 한 사람이 일년에 20~30개씩 받을 때도 있어요. 상을 받아 집에 돌아가면 어깨가 으쓱해요. 참, 이 날은 다들 한복을 입고 와요. 우리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려고 입는 거예요.

몸이 좀 불편한 '창인 학교' 아이들이랑 같이 배우고 노는 날도 있어요. 한달에 두세번은 만나요. 같이 체육대회도 하고 비석치기.만들기.춤자랑도 해요.

우리 학교에서 또 재미있는 게 하나 더 있지요. 바로 친구들이랑 선생님이랑 같이 먹고 자는 합숙이에요. 3학년부터는 1주일씩 학교에서 합숙하면서 각종 예절이랑 다도.명상을 배워요. 밥도 우리끼리 해먹어요. 물론 선생님이 지어주실 때도 있지만요.

1, 2학년만 빼고 전교생이 전부 사물놀이 대회를 준비하느라 방학 때 합숙 훈련을 하기도 해요. 방학 때는 졸업한 언니.오빠들도 놀러와서 더 재미있어요.

그래도 제일 재미있는 건 여름 방학 직전에 전교생이 참가하는 '우리 면 순례' 행사예요. 언니 동생들이랑 같이 조를 짜 2박3일 동안 마을을 돌아보는 거예요. 50~60km를 걸어가다 보면 다들 더워서 헥헥 거려요. 너무 더우면 옷을 훌렁 벗어던지고 개울에서 헤엄을 치기도 한답니다. 첫 날은 민박집 '한스 하우스'주인 한준수 아저씨가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레크리에이션도 준비해 주세요. 벌써 여섯번이나 도와주셨는데 올해도 재워 주실 거래요. 둘째날은 삼림욕장에서 텐트 치고 야영을 해요. 벌써부터 기다려져요.

#학교가 너무 좋아요

요즘 우리 학교에는 손님들이 참 많이 찾아오세요. 일년에 800명이나 다녀가신대요. 어떤 교육감 선생님은 우리 학교를 둘러 보시고는 "영국의 이튼 스쿨보다 훨씬 낫다"고 말씀하셨대요.

손님들이 많이 오시니까 우리 학교 아이들은 처음 보는 어른들한테도 인사를 잘 해요. 아침에는 당번 두명이 교문 앞 횡단보도에서 교통 지도를 하는데요, 지나가는 차들에게 허리를 90도로 숙여 꾸벅 인사해요. 옛날에는 우리 학교 앞에서 교통 사고가 자주 났대요. 보다 못해 전임 교장선생님께서 교문 앞에 나와 아이들과 함께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인사를 하기 시작했대요. 매일 그 길로 다니는 분들은 이제 인사를 받으려고 학교 근처에 오면 속도를 줄이세요. 그 뒤로 교통사고가 한번도 안났대요. 지난해에 정년 퇴임하신 이현곤 교장선생님은 10년 전에 부임하셔서 우리 학교를 신나게 만들어 주셨어요. 또 새로 오신 함성억 교장선생님도 운동장 옆에 물이 흐르는 도랑이랑 황톳길이랑 체험숲을 만들어 주실 거래요. 그러면 놀거리가 더 많아질 거예요.

우리는 너무 신나지만 선생님들한테는 좀 죄송해요. 다른 학교 선생님들 사이에서 우리 학교가 일이 많다는 소문이 날 정도래요. 그래도 일부러 다시 돌아오는 선생님도 계세요. 신경흠(53) 교무주임 선생님이랑 2학년 담임 이강종(49) 선생님이요. '학교 같은 학교'를 찾아오신 거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어떤 선생님은 걱정이 많으시대요. 방과 후에 우리를 붙잡고 공부를 더 시키고 싶은데 특기 적성 수업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요. 사실 우리는 지금처럼 지내는 게 너무 좋은데 졸업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에요. 단월 중학교에서도 특기 적성 수업이 있다지만 지금만큼은 못할 테니까요. 그래도 친구들이랑 같이 있으면 즐겁겠죠?

글=이경희 기자<dungl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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