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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문화경쟁력과 메세나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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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보사회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21세기는 기술과 예술이 화려하게 접목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똑같이 「기술」을 나타내는 희랍어(希臘語)의 technology는 과학기술이라는 뜻이 되고,라틴어의 arts는 예술을 뜻하는 말이 되었으나 이제는 다시 합쳐진 개념과 활동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게 되었다.10억달러이상 수익을 가져다 준 영화 『주라기 공원』이 실리콘 그래픽 회사의 3차원 영상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소프트웨어 기술과 스필버그의 창의적 영화예술이 접목된 결 과라는 것은 이제 상식적인얘기에 불과하다.
국가발전의 궁극적 목표가 삶의 질이요,문화복지라면 수단적 목표는 이를 위한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다.앞으로 1백년 또는 1천년을 지속할 정보사회에서의 국가 경쟁력은 정보통신기술을중심으로 한 기술경쟁력이 필요조건이 될 것이고, 새로운 디자인의 문화상품과 서비스를 세계적 수준으로 만들어 낼 문화경쟁력이충분조건이 될 것이다.멀티미디어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디지털 혁명시대에는 창의력과 상상력에 의한 기술.예술분야의 창조적 전문직이 나라를 이끌어 갈 것이라는 것이 미국 노동부장관 라이시의 지적이다.
그런데 우리의 문화환경은 얼마나 열악(劣惡)한가.시골 도시의길가 상점은 모두 성냥갑 같은 모양이고,정부 청사는 위압감을 주는 사각형 위주다.어린이 날 야외에 나가 아버지들은 주로 고스톱을 즐기고,어머니들은 한풀이식 춤추기에 기를 쓰는 동안 미술관은 파리를 날릴 정도로 한적해 아이들은 문화교육의 기회를 잃고 있다.정치인의 출판회는 성시(盛市)를 이루지만 출판계는 불황에 떨며 판매량 위주의 책을 내기에 급급하다.팝송 콘서트에는 10대 손님으로 광란(狂亂)의 도가니가 되지만 고급 연주장은 썰렁하다.
그러나 이제는 탈이념(脫理念)의 정보사회에서 세계속의 우리문화를 내세워야 할 때다.『자본주의의 종말』을 쓴 기 소르망은 한국자본주의에 한국문화의 이미지가 없다고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유감스럽게도 정부는 우리문화를 획기적으로 키 울 능력도,의지도 태부족(太不足)인 듯하다.다행히 기업이 제품차원의 광고에서 벗어나 기업이미지 차원의 메세나(Mecenat)운동에 나서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메세나는 로마 제국의 재상 마에체나스(Maecenas)가 문예보호에 진력했던 것에서 유래된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의미하는 프랑스말이다.메세나의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후원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꽃피우는데 크게 기여한 피렌체 의 메디치가(家)로 보티첼리.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을 지원했고 자신의 조각학교에서 발탁한 15세의 미켈란젤로를 아들같이 키우면서 위대한재능을 발휘하도록 했다.
선진국이 자발적으로 메세나 운동을 시작한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93년12월 대통령과 기업인들과의 오찬회동에서 기업지원 논의후 94년4월 「한국기업메세나 협의회」가 창립되었다.메세나협의회 창설 1주년 기념식에서 세계적으로 촉망받는 첼리스트 장한나양이 동아그룹이 지원해 확보한 1백만달러짜리 1757년산 과다니니첼로로 브루흐의 곡(曲)을 연주함으로써 메세나라는 생소한 용어와 활동이 일반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예술활동지원이 기업의 자선활동이라고 인식돼선 참다운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메세나협의회 회원사가 1백70여개사는 되지만 아직도 30대 그룹중 10개사는 회원가입을 하지 않고 있다.이들그룹중 몇개 회사는 언론사를 운영하면서 몇백억원 의 적자를 낼지언정 메세나운동에는 인색하다.돈과 물질은 나눌수록 가난해진다는 가치관의 산업사회에서 성장한 우리나라 기업들이,정보와 예술은 나눌수록 풍부해진다는 정보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이제는 메세나운동을 기업전략의 하나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백범(白凡)김구(金九)선생은 일찍이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만하고,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막을만 하면 족하다.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文化)의 힘이다』라고 선견력(先見力)을 보인 바 있다.우리의 문화경쟁력이 민간기업의 메세나운동에 의해 촉진될 수는 있지만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정부는 명확히 인식해 21세기 정보화정책과 문화정책이 두 수레바퀴로 움직여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진주 생산기술硏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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