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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회장의 땜질 처방으론 역부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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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 31면

구원투수 페터 쿠르에르 회장이 병든 스위스계 거대 금융그룹 UBS의 수술에 성공할까.
지난주 쿠르에르는 그룹의 3대 부문인 투자은행, 자산운용, 프라이빗 뱅킹을 분리해 독립성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별도의 회사로 완전 독립시킨 것은 아니지만 각 부문이 알아서 영업하고 수익을 내도록 했다. 그는 비즈니스 전략을 재검토한 결과 “각 부문이 한 회사처럼 움직이면 서로 짐이 되는 취약성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흔들리는 스위스계 금융공룡 UBS

이로써 1998년 유니언 뱅크 오브 스위스(UBS)와 스위스 뱅크 코퍼레이션(SBC)이 결합한 이후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금융 수퍼마켓 전략이 수정되는 셈이다. 금융 수퍼마켓은 투자은행과 자산운용 등 금융의 모든 부문을 한 지붕 아래 묶어놓는 전략을 말한다.

그동안 UBS는 미국의 씨티그룹을 벤치마킹해 프라이빗 뱅킹(PB) 전문회사인 페인웨버와 투자은행인 워버그 등을 사들여 덩치를 불렸다. 그 선봉에 직전 회장인 마르켈 오스펠이 있었다. 그는 덩치 불리기 전략으로 소규모 은행이 대세였던 스위스 금융 지형을 뒤흔들어 놓았다.

UBS는 큰 덩치 덕분에 상대적으로 싼값(저금리)에 자금을 조달해 머니 게임을 벌일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오스펠 전략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싼값에 조달한 자금을 활용해 긁어 모았던 서브프라임 관련 증권들이 부실화하면서 자산 420억 달러(약 42조원)가 쓰레기로 전락했다.

그러나 오스펠 등 그룹 경영진은 일이 벌어진 뒤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챘다. 거대한 조직 한구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금융 수퍼마켓 전략의 전형적인 문제점이다. 이는 미국 씨티그룹과 독일 도이체방크 등 같은 전략을 추구했던 금융그룹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UBS 주주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오스펠이 물러나고 쿠르에르가 구원투수로 투입됐다.

하지만 UBS의 과감한 수술을 주장하는 일부 주주들의 눈엔 쿠르에르가 여전히 ‘오스펠의 참모’로 비춰치고 있다. 그들은 올 초 주주총회에서 그가 선임되자 야유를 퍼부었다. 실제로 그는 스위스 취리히대학 법학과 출신인 수재형 변호사다. UBS의 법률·경영 자문가 출신이다. 야전에서 단련된 인물이 아니다.

그의 머리에서 UBS를 살릴 새로운 비전이 제시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시장의 판단이다. 금융 부문별 독립성을 강화하는 조치만으론 UBS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가 완전히 제거되진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가시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UBS 주가는 지난해 4월 최고점과 견줘 70%나 추락한 수준에서 별다른 회복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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