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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보려면 저녁 식사는 포기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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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오후 8시에 공연을 시작한다. 토요일엔 오후 1시 마티네 공연이 추가된다. 일요일은 공연이 없다.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선 오페라는 오후 7시, 발레는 오후 7시30분에 막이 오른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의 공연 개막 시간은 오후 7시30분. 일요일 마티네 공연은 오후 2시30분부터다. 물론 연주시간만 4시간 30분에다 휴식 2회까지 총 5시간이 걸리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오후 6시에 막이 오른다.

빈슈타츠오퍼는 평일엔 오후 7시 또는 7시30분, 일요일은 오후 4시 또는 6시30분에 공연을 시작한다. 도쿄 신국립극장의 공연 개막시간은 주말과 공휴일엔 오후 2시, 평일엔 오후 6시30분 또는 7시다. 평일 오후 2시 공연도 있는데 정년 은퇴하고 시간적 여유가 많은 노년층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선 서울의 경우 음악회는 오후 8시, 오페라ㆍ발레는 오후 7시30분에 시작하는 게 관례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음악회도 오후 7시30분에 시작했으나 퇴근길의 교통 혼잡과 야간 시간대 활동이 늘어나면서 30분 늦춰졌다. 주말에는 오후 3시 공연도 볼 수 있다. 연극의 경우 토ㆍ일은 2회 공연을 하고 월요일은 쉰다.

18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공연은 오후 4시에 시작해 8시에 끝났다. 당시 공연 관람은 비교적 시간 여유가 많은 귀족 계층들의 전유물이었다. 하루 세끼 식사 가운데 가장 푸짐했던 것은 점심 식사였다. 저녁 식사는 공연이 끝난 다음 밤 9시부터 10시 사이에 가볍게 먹었다. 공연 개막 시간은 관객의 식사 습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중산층은 물론 하류층까지 극장을 찾게 되면서 공연 개막시간도 점점 늦춰졌다. 처음엔 오후 5∼6시였다가 나중엔 오후 8~9시로 늦춰졌다. 도심의 가로등이 정비되고 야간 순찰이 강화돼 귀가길이 안전해졌지만 대부분의 관객이 해가 뜨면 일터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무작정 늦출 수는 없었다. 자정을 넘을 경우 극장 측에선 벌금을 물어야 했고 화재 진압을 위해 매일 밤 대기 중인 소방수들에게도 적잖은 금액의 초과 근무 수당을 지급해야 했다. 지금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선 아무리 공연 시간이 긴 작품이라도 종료 시간이 자정을 넘겨선 안된다. 상연 시간이 긴 오페라는 개막 시간을 앞당긴다.

1870년대부터 아예 개막시간을 앞당겨서 공연이 끝난 다음 저녁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마티네 공연이 시작됐다. 하지만 극장은 아무래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가로등이 하나 둘씩 켜질 무렵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기 위해 찾는 곳이다. 주말을 제외한 평일의 마티네 공연은 어린 학생들을 위한 작품이거나 여흥보다는 교육적 목적의 공연이 적합했다. 1886년 파리에서는 학생들을 겨냥한‘목요일 마티네’(matinees du jeudi) 공연이 인기를 모았다. 오데옹 극장의 극장장 포렐이 시작한 공연 상품이다. 당시 프랑스의 국공립 학교에서 목요일은 오전에 수업이 끝나는 반(半)공휴일이었다. 목요 마티네 공연은 1910년까지도 계속됐다.

마티네(matinee)는 아침, 즉 오전을 뜻하는 프랑스어 ‘마탱(matin)’에서 온 말로 아침에 열리는 공연을 가리킨다. 최근에는 오후 공연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확대됐다. 반대말인 스와레(soiree), 즉 저녁 공연이라는 말은 별로 쓰이지 않는다. 공연 하면 으레 저녁에 열리는 것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백천(白天)음악회’라고도 한다. 주말이나 휴일에 열리는 마티네 콘서트가 대부분이지만 최근에는 평일, 특히 목요일 오전에도 열린다. 대개 저녁 공연보다 입장료가 싸며 가족동반에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짜기도 한다. 공연장의 낮시간대 활용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마티네 공연이 아닌 경우엔 어차피 공연 시간은 저녁 식사시간과 겹치게 마련이다. 퇴근길 러시아워와 겹쳐 대중교통이 편리한 도심의 극장이 아니면 저녁 식사 느긋하게 먹는 것은 처음부터 포기할 수 밖에 없다. 공연 관람 당일엔 점심 식사를 푸짐하게 한 다음 저녁엔 간단하게 요기하는 것은 어떨까. 공연 전에 식사를 하지 못해더라도 공연장 로비에서 중간 휴식 시간에 허기를 달랠 수 있는 먹거리를 갖춰야 함은 물론이다.

공연 개막시간은 저녁 식사 시간은 물론 퇴근 시간과도 겹친다. 대도시 인근 위성도시에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은 평일 공연 관람은 좀처럼 엄두를 낼 수 없다. 그래서 뉴욕 필하모닉에서는 롱 아일랜드나 코네티컷에서 뉴욕까지 열차로 통근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평일 오후 6시 45분부터 1시간 동안 중간 휴식 없는 미니 콘서트를 마련다. ‘러시아워 콘서트’다. 해설도 협주곡도 없이 서곡과 교향곡만 연주한다. 물론 입장료도 22~52달러로 정기 연주회 티켓(25~90달러)보다 저렴하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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