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남북경협의 대원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미 양국에 의한 4자회담 제의를 계기로 한반도 정세가 격변기로 접어들고 있다.4자회담과 관련해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남북한간 경협(經協)문제다.이 문제는 추진방법.시기.규모등을 둘러싸고 남북한간은 물론 남한안에서도 큰 이견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경협문제에 대해 대원칙을 세워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하며,다음의 두가지 견해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하나는 정경(政經)일치 원칙이다.이 원칙에 따르면 경협카드는북한이 남한 실체를 인정하고 남북한간 당사자 대화를 갖도록 하는 수단으로,또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유도하는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나아가 정치면에서의 북한 태도 에 따라 경협확대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정경분리 원칙이다.정치면에서의 남북한 관계 전개와는 별도로 경제협력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런 주장의 주된 근거는 가능한한 북한과의 접촉면을 넓혀 남한의 유용성과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또 북한은 어쩔 수 없는 우리들의 반쪽이며 그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발전을 이끌어 주는 것은 민족적.동포애적 차원과통일기반 구축이란 측면에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상의 두가지 견해는 그 나름대로 강점과 약점을 지니고 있다.정경일치 원칙을 지키면 남북한 정치관계의 경색은 곧바로 경제협력의 경색으로 이어진다.북.미(北.美),북.일(北.日)관계 개선에 따라 남한기업만이 북한진출에서 소외될 가능 성도 있다.
또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동포를 못본 체한다는 정서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다.
한편 정경분리 원칙에도 문제는 있다.대남(對南)무력적화통일 전략을 버리지 않고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북한에 경제적 도움을 준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란 비난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또 남한이 갖고 있는 유일한 카 드라 할 수있는 경제협력이란 카드를 그렇게 쉽게 쓸 수 없다는 주장이다.
남북관계에 있어 철저한 정경일치 원칙이나 정경분리정책을 사용한다는 것은 쉽지도,또 바람직하지도 않다.보다 신축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크게는 정경일치 원칙을 골간으로 하되 가능한한 북한과의 접촉면을 극대화해야 한다.구체적인 예를 들면 북한과의 일정금액 이상 경제협력은 정부에서 조정하되 인도적 차원에서의 경제원조나 일정금액 이하의 경제협력사업은 가급적 개별기업이나 해당 주체들에 최대한 자율권을 주자는 것이다.일정금액수준은 남북한 관계 개선정도에 따라 조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전략은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과의 평화공존과 경제협력만이북한의 곤경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임을 인식케 해주고 또한 우리 기업들로 하여금 북한 진출기반을 마련해 주는 효과를갖게 해줄 것이다.
남북경협을 추진하는 우리 기업들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당분간은 대(對)북한사업에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북한의 외환사정이나 구매력,북한 파트너들의 사업에 대한 이해도나 자세 등을 고려할 때 대북한 사업에서 수익률을 올리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아울러 대북(對北)경협을 둘러싼 기업과 정부간의 갈등,남한 기업간의 과도한 경쟁,깊은 생각없는 졸속 추진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한당국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기업 입장에서 볼 때 북한 투자는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남미 등에 대한 투자와 경합관계에 있다.물론 동포애나 내고향이라는 「알파」요소가 있기는 하나 그것은 부분해법.단기해법에 불 과하다.투자수익률 확보 등을 포함해 투자대상자로서의 북한의 매력도를 높이는 일에 전력해야 한다.물론 가장 중요한 밑바탕은 남북한간 신뢰회복과 안정된 평화관계 수립이라는 점을 정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윤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