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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의 상징' 금배지를 없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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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7대 총선이 끝나자 새로운 금배지의 주인공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지고, 그들이 달고 다니게 될 금배지에 대해서도 순금이니 아니니, 무궁화 무늬 안에 있는 글자는 뭐니 하는 세인들의 호기심과 말들이 많다. 그런데 왜 국회의원들은 배지를 달아야 하나. 장.차관들도, 시.도의회 의원들도 배지를 달고 다닌다는데, 왜 달까.

몇해 전 학교운영위원장인 나에게 교장선생님이 "텔레비전이나 신문 사진에 자주 나오는 사람들이 양복에 빨간 버찌 열매 같은 거 세 개가 있는 배지를 달고 있던데, 힘있는 사람들이 많이 다는 거 아닌가요. 그거 좀 하나 구해 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성금을 내면 주거나, 우체국에서도 살 수 있는 사랑의 열매인데도 그게 잘나가는 사람들의 무슨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인식하고 있었다.

1970년대에는 대학생들도 자기 학교의 배지를 달고 다녔다. 물론 좋은 대학교의 학생들만 배지를 달고 다녔다. 나는 이러이러한 좋은 학교에 다니는 사람이니 알아봐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 학교의 배지를 달고 다니는 대학생은 아무도 없다. 아니 배지가 있는 줄도 모를 것이다. 오로지 문구류에 학교의 문장(紋章)으로 사용되기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왜 지금의 대학생들은 배지를 달고 다니지 않을까. 그것은 좋은 대학교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자기 과시를 하던 시대가 지났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시대에 국회의원들이 금배지를 달고 다닐 이유가 있을까. 국회에서 국회의원과 아닌 사람을 구별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국회 직원들이 혹시 실례를 범할까봐 미리 단속하는 것이란다. 과연 일반 시민이 국회의원을 몰라보았다고 해서 크게 잘못될 일이 있을까. 오로지 자기의 권위를 위해 달고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의원들이 금배지를 달고 다니니까 장.차관도, 시.도의회 의원도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배지를 다는 것 같다. 꼴불견인 것은 배지를 달아야 하는 여자 의원들이다. 남자들은 양복 상의 깃이 빳빳하기 때문에 배지를 지탱할 수 있다. 그러나 여자들은 투피스 정장이 아닌 다음에야 배지를 달기가 어색하다. 여자 정장도 대부분 배지의 위치에 브로치를 달기 때문에 배지가 설 자리가 없다. 심지어 하늘하늘하는 블라우스에 배지를 달아 옷이 배지 무게로 축 처지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옷맵시를 구겨가면서까지 배지를 꼭 달아야 하나.

외국의 어느 나라도 의원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장.차관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배지를 달고 다닌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회사가 자기 직원들에게 소속감을 심어주기 위해 다는 배지나 무슨 캠페인에 찬동하는 사람들이 다는 배지와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고, 권위를 내세울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 권위의식을 심어주고 위화감을 주는 그런 배지는 필요 없다고 본다. 이러한 무궁화 모양의 배지는 여러 단체들에서도 흉내내 달고 있으며, 잘 모르는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범죄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는 변호사 배지를 달지 않아 많은 불편을 겪지만, 배지-계급 문화가 싫어 감수하고 있다. 정말로 다른 사람과 구별이 필요하다면 색깔이 다른 신분증을 국회에 출입할 때 달고 다니면 되지 않을까?

조상희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