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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탁 노인 위한 '호텔급 요양원'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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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 요양원 6층 놀이방은 대부분 치매인 노인들에게 특히 인기다. 그림 그리기, 지점토 만들기 등을 ‘동심으로’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와, 걸이다!" "에구, 또 잡혔네."

21일 오후 서울시 송파구 삼전동 '송파 노인 전문 요양원'.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들이 방안에서 윷놀이를 하고 있다. 오정순(79)할머니가 "언니, 내가 이겼지"하고 약을 올리자 김이덕(92) 할머니가 "한번만 봐달라"며 떼를 쓴다. 곁에서 윷놀이를 도와 주던 윤용숙(32)치료사는 "정신이 오락가락 하던 노인들이 게임만 하면 또렷해져 재미있게 논다"고 말했다.

옆방에서는 박봉세(81)할머니와 김인자(77)할머니가 흰 콩과 검은 콩을 수북이 쌓아놓고 색깔별로 고르고 있다. 60여명의 노인 가운데 정신이 가장 맑아 '똑순이'로 불리는 金할머니는 "방도 호텔 같고 언니.동생도 많아 난생 처음 살맛을 느낀다"며 즐거워했다.

지난달 21일 문을 연 '송파 노인 전문 요양원'이 저소득층 치매 노인들의 행복한 보금자리로 자리를 잡았다.

오갈 데 없이 외롭게 사는 노인들을 돌보기 위해 서울시가 52억원을 들여 세운 요양원이다. 시립 무료 시설로는 1996년 문을 연 중계 노인복지관에 이어 두 번째다.

6층 건물 중 2~5층이 노인들의 숙소. 노인들은 금침을 깐 온돌과 푹신한 침대가 있는 잠자리를 '구름방'이라 부른다. 판자촌 칙칙한 쪽방 등에서 지내던 분들이다. 팔다리가 불편해 누워 지내는 서경순(79)할머니는 "혼자 살 땐 인생이 서글퍼 종일 운 적도 많았다"며 "간호사들이 '엄마'라고 부르며 돌봐주는 데다 잠자리도 너무 편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노인들(70~102세)은 대부분 치매 환자다. 이들은 유치원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6층 놀이방을 제일 좋아한다. 그림 그리기.지점토 만들기.건강체조.구슬꿰기 등을 맘껏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머가 좋아 '인기 짱'인 팔순의 정정춘 할아버지는 진달래꽃 그림에 노란색을 칠하고 있는 할머니 곁에 가 "할멈, 노랑 저고리 사줄까"라며 농담을 건넸다. 조수연(46) 생활지도원은 "다양한 놀이가 치매 치료에 좋기 때문에 매일 규칙적인 놀이 시간을 갖는다"고 말했다. 놀이방 바로 곁에는 물리치료실이다.

송파 요양원에는 물리치료사.영양사.생활지도사.간호사 등 52명이 하루 2~3교대로 일한다. 어르신 대부분이 중증 환자여서 항상 곁에서 기저귀를 갈아주고 거동을 살핀다. 사망시 장례도 직원들이 치른다.

요양원 입주는 형편이 어려운 무의탁 독거노인을 기준으로 한다. 시내 25개 구청에서 신청을 받아 요양원에서 '치매 등 혼자 살기 곤란한 정도'를 기준으로 선정한다. 정원은 80명이지만 입소 예정자가 많아 빈자리는 사실상 없다. 운영비는 서울시 예산 11억원이 올해 몫으로 책정돼 있다. 02-2202-8734.

이성희 원장은 "편안하게 여생을 마치도록 잘해 드리고 싶지만 하루 부식비가 불과 1700원일 정도로 예산이 빠듯해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내에는 65세 이상 노인의 8.2%인 5만5000여명이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보호가 필요한 중증 환자는 4600여명. 서울시는 2006년까지 무료 치매 요양원을 12곳으로 늘릴 예정이다. 현재 동작.용산.금천구 등이 시설유치를 신청했다.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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