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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괴담과 신화 사이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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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하나요?” 늦은 밤 TV토론에서 사회자가 묻는다. 오른쪽에 앉은 전문가가 나선다. “타고난 재능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내버려둬야 합니다. 그래야 창의력을 발휘해 큰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왼쪽 전문가가 반격한다. 부모의 방치 속에서 마약에 빠진 아이들의 사례를 든다. 오른쪽 전문가가 나선다. 부모가 한 번도 공부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던 고씨 집안의 세 아이들은 모두 미국 명문 대학의 교수가 되었단다. TV를 끄고 누운 어머니 마음은 혼란스럽다. 풀어서 키우면 우리 아이는 마약 중독자가 될까 아니면 석학이 될까?

이런 식의 논쟁이 우리 사회를 갈라놓는다. 한·미 FTA를 하면 경제 쓰나미가 몰려올 것이라는 주장이 등장하는가 하면, 소득 3만 달러짜리 선진국이 된다는 주장이 맞선다. 어떤 이는 정부의 활동을 늘려야 잘 살 수 있다 하고, 어떤 이는 정부를 최소화하고 세금을 줄여야 선진국이 된다고 한다.

개방에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나면 무역량이 국내총생산보다 큰 네덜란드가 잘 사는 것은 히딩크의 마법 때문이냐고 물어보라. 소득세를 낮추면 경제성장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째서 미국 경제는 최고 소득세율이 90%에 이르렀던 1950년대와 60년대에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했느냐고 물어보고.

개방과 작은 정부는 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두 기둥이다.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 할 수도 있는 자유주의의 경제 성적표에 대해서 혼란이 계속되고,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현실을 보면 경제학의 초라한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진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적어도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장님처럼 소수의 성공담과 실패담으로 결론을 내리는 위험한 일을 피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경제학자들은 세계 100여 국가의 경험을 모두 관찰, 거기서 경제정책과 경제성장률 간에 존재하는 일반적 관계를 찾아내려 노력한다. 어려운 문제에도 직면한다. 어떤 나라가 개방을 했는데 동시에 방만한 재정정책으로 정부 적자를 증가시켰다면 뒤따른 낮은 성장률이 개방 때문인지 재정적자 때문인지를 가려내는 통계학적인 방법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노벨상급 경제학자들이 이 문제에 매달렸고, 수백 편의 논문이 쏟아져 나왔다. 결론이 상충되는 논문들이 부지기수지만 다수의 학자가 동의하는 큰 그림을 그릴 수는 있다. 하나는 상품시장을 개방한 국가는 그렇지 않은 국가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높은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둘은 정부 소비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 국가는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높은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들이 여러 통계학적 방법을 써도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며, 효과의 크기도 크지 않아 개방을 좀 더 하고 정부의 크기를 조금 줄인다고 경제성장률이 점프할 것이라는 확신은 주지 못한다. 즉 엄밀한 분석은 자유주의의 손을 들어주고 있기는 하지만 한판승과는 거리가 멀다.

타고난 성격이 다르면 거기에 맞는 교육방법이 다를 수 있듯, 나라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으면 적합한 정책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세계의 평균적인 모습은 경제정책이 지향해야 할 일반적 방향을 제시해 준다.

또한 이러한 결과는 자유주의적 정책을 취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하는 사람이나, 반대로 저절로 선진국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경계의 눈초리로 쳐다보게 하는 교훈을 던져준다.

권력의 향배가 달려 있는 논쟁에서 한 진영이 어떤 정책을 쓰면 나라가 망한다고 떠드는데, 반대 진영이 그 정책으로 나라 형편이 조금 나아질 확률이 높다고 이야기한다면 관중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논객들은 근거가 빈약한 이야기들을 과장해 자신 있게 애기하고 양 극단으로 달려간다. 배우들이 그런다 해서 관중까지 따라다닐 필요는 없다. 내일은 대한민국 건국 60년이 되는 날이다. 이제는 정치꾼들이 풀어놓는 괴담과 신화 사이에 서서 냉정한 모습으로 양편을 심판하는 관중이 더 많아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송의영 서강대·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