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쏜 14만 발이 금메달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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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아테네 올림픽, 진종오는 50m 권총에서 본선 점수 576점으로 1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결선에서 여섯 발째까지 여유 있게 선두를 달리던 진종오는 일곱 발째 6.9점이라는 믿기 힘든 저조한 점수로 무너졌다. 8점만 쐈어도 금메달이었는데 표적지 중앙의 검은 원도 맞히지 못하는 어이없는 실수를 해 메달의 색깔이 은빛으로 바뀌었다.


진종오는 그날 사격장에 자신의 실수를 묻고 돌아섰다. 시상식 직후 김선일 감독에게 “ 베이징에서 꼭 금메달을 안겨드리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그 뒤 진종오에게는 ‘통한의 은메달’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진종오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훈련했다. 4년 동안 어림잡아 14만 발 넘게 쐈다. 안정된 기량으로 국제무대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다. 2006년 광저우 월드컵에서 10m 공기권총과 50m 권총에서 2관왕을 차지하며 한때 두 종목에서 국제사격연맹(ISSF) 랭킹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올림픽이 열리는 올해 들어 금메달에 대한 부담감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16년 동안 끊긴 사격 금메달의 계보를 자신이 이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이었다. 4월 베이징사격관에서 열린 프레올림픽에서는 입상에 실패했다. 6월 두 차례의 국내대회에서는 본선 559점과 561점으로 부진했다.

평소 진종오는 “기록을 내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만약 올림픽이 없고 국내 대회만 있다면 쏘다가 그만두면 된다. 그러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려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진종오는 아내 권미리씨와 함께 스트레스를 털어낸다. 훈련이 없을 때는 110만원짜리 DSLR 카메라에 줌렌즈까지 장착해 부인과 함께 전국을 여행하며 사진 찍기에 빠진다. 권씨는 진종오가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베이징의 한식당에서 친척 언니와 사촌동생과 함께 TV로 지켜봐야만 했다. 입장권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종오는 10m 공기권총 경기를 앞두고서 감기 기운이 있었다. 은메달을 딴 뒤 더 심해져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본선에서 5차 시리즈까지 선두권을 달리다 6차 시기 마지막에 7점, 8점, 8점을 쏘면서 공동 2위에 머물렀다. 경기가 끝난 뒤 진종오는 “감기에 걸려 본선 때 여러 번 기침을 했는데 내 좌우에서 경기하던 선수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베이징=한용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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