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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tyle] ‘맛집 월드 스타’ 한국서도 통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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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탈리아 투스카나 지역 해변가에 위치한 ‘라 피네타’(미슐랭 별 하나)의 오너 셰프 루치아노 자체리. 농어 구이를 주문하니 당일 잡힌 농어를 들고 나와 조리 과정을 설명했다上. 자체리는 손님이 자리에 않으면 직접 메뉴를 건네고 눈을 맞추며 주문을 받았다下.

전 국민이 요리 평론가가 돼 가는 나라, 한국.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기만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제 얼굴 크기만 한 카메라를 들이미는 모습은 이미 낯설지 않다. 수많은 맛 블로거들이 맛집을 평가하고, 또 이들의 평가가 식당의 성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들 것이다. 요즘 이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맛집인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표적이다. 이런 수요를 간파한 한 호텔이 때마침 국내에 미슐랭 레스토랑을 연다. 힘이 센 우리 맛집 블로거들은 세계적인 권위에 별점 몇 개를 줄까.

◇새 유행, 미슐랭 별점 레스토랑 탐방=맛집 블로거 ‘나쁜요자’는 올여름 9일간의 휴가를 프랑스 파리에서 보냈다. 휴가 중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인 ‘레장바사되르’를 방문했다. 최소한 한 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는 이 레스토랑의 ‘미슐랭가이드’ 평점은 별 두 개. 국내와 현지에서 6통의 e-메일을 주고받은 끝에야 간신히 자리를 예약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점심 한 끼에 지불한 금액은 우리 돈으로 약 20만원. 비슷한 노력과 돈을 들여 몇 곳을 더 들렀다. 그는 “요즘 맛집 블로거들 사이에서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것이 대유행”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맛집 블로거들은 미슐랭에서 별을 받은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일을 ‘성지 순례’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내의 웬만한 맛집은 대부분 거쳤다는 그는 "내년 휴가에는 일본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가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했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열기는 맛집 블로거들을 통해 쉽사리 확인된다. 미국 맨해튼에 거주하면서 ‘사월이’라는 맛집 블로그를 운영하는 천현주(37)씨. 최근 블로그 방문자 수가 갑자기 느는 바람에 적잖게 당황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맨해튼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장-조지’ 방문기 때문이었다. “이 덕분에 스크랩이나 댓글, 블로그 친구가 크게 늘었어요. 한국에서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열기가 대단한가 봐요?” 전화를 통해 천씨가 오히려 반문한다. 그의 블로그가 아니더라도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방문기는 요즘 화제의 첨단이다. 가격과 찾아가는 방법, 주문 요령을 묻는 질문에, 다음번에 꼭 가보겠노라는 다짐성 댓글도 적지 않다.

◇맛집 블로거 vs. 국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미식 문화를 주도하는 블로거들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숭배가 지속될까? 이를 가늠할 중요한 시험대가 10월 개관을 앞두고 있는 롯데호텔의 ‘피에르 가니에르’다. 이 레스토랑은 ‘미슐랭가이드’ 평점에서 별 세 개를 받은 프랑스 파리점의 분점이다. 이 레스토랑을 열기 위한 롯데호텔의 물량 공세도 엄청나다. 인테리어 비용만 60억원이 투입된다. 국내에 없는 고가 와인 200여 종도 새롭게 들여올 예정이다.

예약은 7월 시작됐으며 올 12월분까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현재 다른 호텔들은 롯데의 성패를 봐 가면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도입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단 맛집 블로거들의 초기 반응은 나쁘지 않다. 입소문 효과가 큰 편이다. 예를 들어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가니에르가 선보일 새로운 와인 리스트를 서로 점쳐보는 게 유행이다.

맛집 블로거들은 어렵사리 해외까지 찾아가 경험했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장점을 보다 쉽게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주로 재료의 신선함을 강조한 다양한 조리법, 고압적이지 않은 서비스와 분위기, 그리고 손님의 태도와 질까지 따지는 깐깐함 등이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국내에 문을 열고나면 환상은 사라지고 현실만 남을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당장 어렵사리 파리의 미슐랭 레스토랑을 찾았던 블로거 ‘나쁜요자’는 “실제로 가보니까 우리나라 호텔 레스토랑과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고 평가한다.

더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둘이 와인을 곁들여 식사하면 우리 돈으로 150만원 정도가 든다. 경험 삼아 한 번이야 가겠지만, 두 번 이상 찾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개관 직후 두 자리를 이미 예약한 미식가 주계환(55)씨의 주장이다. 공인된 1회 접대비 한도가 50만원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접대 자리로 활용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더욱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코스도 우리의 음식 문화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롯데호텔 관계자는 와인을 빼고 코스를 줄이면 비용도 한결 낮아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11월까지 200명 정도가 이미 예약 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맛을 둘러싼 신화와 현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과 가혹한 우리 맛집 블로거의 대결은 막 시작됐다.  

글·사진=이여영 기자

◇미슐랭 가이드=세계적인 타이어회사 미쉐린이 매년 봄 발간하는 식당 및 여행가이드 시리즈로 프랑스어로는 ‘기드 미슐랭’이라고 한다. 전담 요원이 평범한 손님으로 가장해 한 식당을 1년동안 5~6차례 방문해 직접 시음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내린다. 음식맛, 가격, 분위기, 서비스 등을 바탕으로 일정 수의 식당을 엄선하고 다시 이들 가운데 뛰어난 식당에 별(최고 별 3개)을 부여해 등급을 매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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