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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삼칼럼>金대통령의 개혁 숙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24일 발표한 「신(新)노사관계 구상」은 오랜 금기(禁忌)를 깬 과감한 개혁구상이다.이로써 金대통령은 「YS도 이젠 카드가 다 떨어졌다」는 세평을 지워버릴 수있게 됐다.
이 구상이 앞으로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노동계와 기업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될 것이기 때문에 합의를이끌어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노사관계에 대한 주장은 반체제적 주장인 것 쯤으로 치부됐던데 비하면 정부와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공개적 논의가 가능해진 것만 해도 획기적인 진전이라고 하겠다.
현 정부의 임기는 2년이 채 안남았다.그러나 개혁작업을 여기에서 멈춰서는 안된다.우리사회는 길고 긴 권위주의 역사를 지녔고 사회 발전도 급속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노사문제 외에도 많은문제들을 지니고 있다.그런 문제들을 임기안에 완 벽히 마무리해놓을 시간은 없다 하더라도 골고루 손은 대야 한다.그래야 개혁의 바통이 다음 정권에까지 넘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노사문제에 이어 앞으로 정부가 착수해야할 주요개혁과제 두가지를 제시한다면 첫째가 공권력의 중립화고 둘째는 국가보안법문제의 합리적 해결이다.
문민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많은 부문에서 민주화와 자유화가 진행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그러나 권위주의시대와 조금도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게 바로 공권력의 정치적 편파성이요,국가보안법의 변함없는 완고성이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민주주의는 법치며 그 법치를 실현하는 것이 검찰과 경찰 같은수사기관들인데 그 공정성을 가장 의심받고 있는 곳이 바로 검찰.경찰이라면 문민정부.문민시대라는 말 조차 무색하지 않을 수 없다.그동안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여러 정치적 사건들 가운데과연 명쾌하게 파헤쳐진 것이 한건이라도 있었던가.
시중에서는 문민정부들어 가장 피해본 기관이 검찰이라고 말하고있다.이는 다른 말로 하면 그만큼 검찰이 정치의 희생물이 되었다는 말도 된다.
이제 총선도 끝났다.지금부터는 정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먼 국가의 장래를 위해 검찰.경찰의 명예와 위상을 회복하는 방안을 사심없이 검토해야할 때다.그것은 다음 대통령에게 넘길 성격의 것이 아니다.누구라도 일단 대통령이 되고난 다음에 는 검찰을 좌지우지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따라서집권 후반기를 맞은 현 대통령이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줄법과 제도를 마련하는데는 적임자일 것이다.
최소한 다음 정권부터는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는 소리를 듣지 않아야 한다.우리 사회의 대표적 엘리트군(群)인 검찰이 이시대에 와서도 그런 평가를 받고 있다면 그것은 국가적 비극일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검찰개혁보다 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른다.검찰개혁에 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국가보안법에 관해선 아직도 서로 다른 의견들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행 법을 그대로 유지해서는 남북관계의 새로운 변화도모색하기 어렵고 인권문제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비난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따라서 이 문제도 사회의 광범위한 논의에 부쳐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론을 내야하며 이 또한 현 정부의 숙제일 것이다.
설사 검찰의 개혁이나 국가보안법의 손질이 현 정부의 임기 안에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착수만으로도 큰의미가 있을 것이다.논의만이라도 활성화해 가닥이라도 잡을 수 있다면 다음 정권을 누가 맡든 그만큼 정치적 부담이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노사문제에 접근하는 정부의 방법을 보면 이제는 개혁에도 노하우를 얻었음을 감지할 수 있다.정부가 복안은 있으면서도이를 미리 공개하지 않고 이해당사자들이 합의를 이뤄내길 유도하는 조심스러움은 독선적이었던 초기의 개혁과 달라진 점이다.검찰의 개혁과 보안법의 개.폐도 그런 접근방법이 효과적일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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