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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신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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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어, 삼익이네….” 올림픽 양궁 경기에서 낯익은 상표의 활에 놀란 사람이 적지 않다. 외국팀도 ‘SAMICK’이 대세였다. 전통적 강호인 미국의 호이트를 삼익스포츠가 맹추격하고 있다. 이 회사는 원래 피아노 부품을 공급하다 1990년 운명이 바뀌었다. 삼익피아노가 어려워지자 아예 활 사업부를 맡았다. 삼익 제품의 비밀은 활 날개에 숨어 있다. 에폭시 수지에다 첨단 탄소섬유를 섞어 10만 번 시위를 당겨도 똑같은 탄성을 유지한다. ‘맞춤형 생산’도 성공비결의 하나. 선수들의 특징에 따라 직원 12명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활을 만든다. 신궁(神弓)을 손에 넣은 한국팀을 뒤따라 지금은 세계 최고수의 절반 이상이 삼익 활을 쓰고 있다.

세계 패러글라이딩 대회에선 ‘하회탈’ 등 우리 전통 문양들이 하늘을 수놓는다. 직원 30여 명의 ‘진 글라이더’(경기도 용인)가 만든다. 패러글라이더의 핵심은 안전성과 속도를 좌우하는 날개. 이 회사는 저항을 줄이고 바람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얇은 천 일곱 장을 겹쳐 꼼꼼하게 박음질한다. 절대 양보하지 않는 것은 기술. 돌풍 속에서 날개 복원력을 시험하던 파일럿까지 잃으면서 얻어낸 기술이다. 패러글라이더의 가격은 300만~500만원. 이 회사는 값을 깎자는 업체와는 절대 거래하지 않는다. 6년 연속 세계 선수권 대회를 석권하고, 30%의 세계 시장 점유율로 7년째 1위를 차지해온 자부심이 대단하다.

“손에 땀이 나면 자꾸 미끄러진다.” 미국 NBA의 새 공인구인 스팔딩 제품에 대한 섀킬 오닐의 불평이다. 그 이전 20년간 공인구는 우리나라 스타스포츠의 농구공. 1965년 서울 미아리에서 출발한 허름한 업체가 세계 시장을 오랫동안 휘저었다. 농구공 안에 수만 번 실을 감고 외피를 접착하는 기술이 탁월했다. 최근 NBA의 공인구 교체는 정치적 판단 때문. 소가죽 외피 대신 합성고무를 쓰라는 동물보호단체의 눈치를 본 것이다. 그러나 프로선수와 농구 팬들은 스타스포츠 농구공에 대한 집착을 숨기지 않는다. NBA는 예전에도 그랬다. 6개월 만에 공인구 교체를 백지화하고 다시 스타스포츠 공을 쓴 바 있다.

지난 1월 우리 대표팀이 봅슬레이를 빌려 타고 아메리칸컵 동메달을 따 슬픔과 감동을 주었다. 그만큼 전문 스포츠용품 시장의 장벽은 높다. 첨단 기술은 물론 장인정신이 없으면 못 만든다. 그래서 TV 화면에 비친 우리 중소기업의 국산 활이 더 반갑다. 참고로, 세계 레포츠용품 시장 규모는 200조원이 넘는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