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과상자속의 현찰 61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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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이 현금 61억원을 사과상자에 넣어 대기업 경리창고에 숨겨뒀다가 검찰에 압수됐다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1만원권이 가득 담긴 사과상자를 차곡차곡 쌓아놓은사진을 보는 마음이 착잡하고 분통이 터지며 맥이 풀린다.全씨가도대체 도덕성이나 양심이 있는 사람인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全씨는 88년 백담사로 가면서 대국민 사과문을 내고 연희동사저와 회원권,개인 금융재산 23억원과 여당총재 당시 쓰고 남은 1백39억원을 전재산이라며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밝혔었다.그런데 검찰발표를 보면 全씨는 그후에도 2천2백억원 을 숨겨놓고써왔으며,아직 1천4백억원 정도를 남겨 갖고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사실 시중에 全씨가 숨긴 돈이 어디 그 창고안의 것 뿐이겠느냐는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또 86,87년에 발행한 출처불명의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가 최근까지 무더기로 나돌고 있다는소문이 全씨의 비자금을 겨냥해 골프장 주변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全씨는 법정에서 「찾을 수 있으면 찾아보라」는 식의 대응을 하고 있다고 한다.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법정에까지 서게 된 마당에 돈을 챙기기 위해 자존심마저 팽개치고 수사기관과 숨바꼭질을 마다하지 않는 듯해 참담한 느낌마저 든다.全씨가 조금이라도 여론의 흐름을 읽는다면 지금이라도 남겨둔 비자금의 전모를 스스로 밝히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한편 검찰의 태도도 석연치 않다.이미 1월중에 현금상자를 찾아내 그동안 중간발표,1차공판때 등 여러차례 발표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왜 발표를 총선후로 미뤄왔는지 의문이다.여당후보로 출마한 당해기업체 전총수의 선거에 악영향을 줄까봐 일부러그랬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또 아직 全씨가 1천4백억원을 더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한 것도 문제다.검찰이 「추정」단계의 내용을 발표한 것도 잘못이지만 압수해야 할 뇌물을 엄청나게 숨겼다고 지적하면서찾아내지 않는다면 검찰의 직무유기나 태만이 아니 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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