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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레터] 놀라운 ‘불온서적’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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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주 금요일까지만 해도 ‘불온서적’의 힘이 이렇게 강력할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달 31일 국방부가 불온서적으로 지정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책들 이야기입니다.

각 온라인 서점과 교보문고가 8월 1~7일까지 첫 주 도서 판매량을 집계해 발표한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니 국방부가 이번주 도서 판매에 큰 역할을 한 것이 확연해 보입니다. 불온서적으로 지정된 책들이 눈에 띄게 많이 팔렸기 때문입니다. 가뭄 든 출판계에 ‘단비’처럼 고마운, 불온서적 효과입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가 쓴『나쁜 사마리아인들』 (부키)은 그중에서도 대표 격입니다. 이미 10만권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인데다, 최근 대한민국 학술원이 선정한 ‘2008 우수학술도서’ 383종 하나로 선정된 책이기에 가장 논란이 뜨거웠지요. 국방부는 이 책을 ‘반정부·반미’로 분류했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해서 더 논란이 된 책이기도 합니다. 대기업 중심의 한국식 개발전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일부 신자유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한 책입니다. <1일자 30면 사설 참조>

어쨌든 이 책은 ‘불온’ 딱지를 붙이자마자 온라인서점 ‘예스24’ 종합베스트셀러 6위를 차지했고. 1일부터 ‘국방부 불온서적 23선’을 주제로 발빠르게 독자 리뷰 이벤트를 실시한 ‘알라딘’에서는 1위로 껑충 올랐습니다. ‘인터파크도서’에서는 15위, 교보문고에서는 21위였습니다. 이 책을 낸 부키 출판사의 박윤우 대표는 “관련 보도가 나온 뒤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며 “지난 일주일간 1만2000부를 추가로 더 찍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인문·사회과학 부문에선 2000~3000부도 채 팔리지 않는 책들이 수두룩한 점을 감안하면 이는 어마어마한 판매량입니다.

지난 일주일간 인터넷에는’좋은 책 추천해주신 국방부에 감사드립니다’며 국방부를 조롱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들끓었습니다. 허탈감과 안타까움을 피력한 이들도 많았습니다. 한편 출판인들은 “국방부에 대한 조롱과 희화화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며 토론 끝에 7일 국방부의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국방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해집니다.

이런 와중에 8일 ‘예스24’ 홈페이지에는 장하준 교수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정작 화제의 저자로 떠오른 그는 ‘불온서적’해프닝에 대해서는 쿨한 반응입니다. 대신 ‘희망’에 대해 이렇게 말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희망을 제대로 가지려면 현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사람들이 왜 경제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민주주의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장벽들이 있는데 모른 척하고 ‘하면 된다’라고 하면 할 수 없다”며 “국민들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요. 그는 “공부하는 게 국민의 의무”라고도 했습니다. 공식 몇 개 쓰고, 통계 막 뿌리는 전문가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면서요. 어떻게 들리시나요? 너무나 불온한 발언인가요?

이제 우리는 세련된 방법으로 애국하는 방법까지 ‘공부’해야 할까 봅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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