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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속 보이는 '흑자' 자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재정경제원 당국자들이 경기를 진단할 때 흔히 쓰는 말이 있다.『한달 수치로 확대 해석하지 말고 좀더 지켜 봅시다.큰 흐름을 봐야지요.』 그러던 재경원이 총선을 불과 이틀 앞둔 9일 느닷없이 「3월중 국제수지」를 발표하고 나섰다.3월중 무역수지가 그동안의 적자에서 5천만달러 흑자로 반전돼 경상수지 적자도2월보다 크게 줄었다는 내용이었다.
본래 국제수지는 한국은행에서 매월말,그 전 달치를 발표한다.
한은이라고 통계를 일부러 늦게 내는 게 아니다.
매달 1일 통상산업부가 전달 통관기준 수출입 통계를 발표하면여기서 운임.보험료를 뺀 국제수지 기준 무역수지와 무역외 수지,해외 송금이나 기부금같은 이전수지를 합쳐 잠정치를 집계하는데빨라야 한달가량 걸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3월치는 재빠르게 재경원이 선수를 쳤다. 일시적 현상이요,반짝 흑자이거나 아니면 계속 적자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한은측은 즉각 상당한 서운함을 표시했다.현재로선3월중 무역수지가 꼭 흑자라고 보장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한달 통계로 일희일비(一喜一悲) 말라고 강조하던 재경원이 스스로 확실하지도 않은 「한달 통계」를 놓고 일희하고 나선 것이다.어디 경제가 「한달살이」인가.
이렇게 이해하기 힘든 일은 비단 이 뿐 아니다.최근들어 줄을잇고 있다.8일에는 증안기금을 통한 증시 부양책이 나왔다.설령추진해도 가을 정기국회에서 법 개정뒤 내년부터나 이뤄질 법인세최저한세율 인하도 같은 날 발표했다.「검토 사항」이란 주석을 단 채. 선거 유세과정에서 금융실명제 때문에 중소기업과 상인이어려워졌다는 주장이 나오자 부랴부랴 실명제 홍보 만화책자 30만부를 찍어 택시.버스에까지 돌렸다.
그래 놓고도 재경원 직원들은 선거를 의식해 여당을 도와주는 일이 과거보다 줄었다고 위안한다.선거는 짧고 경제는 길다.지금총선 직전 주가 관리나 하고 「반짝 통계」를 갖고 웃고 있을 때가 아니다.정책 당국이 본분을 잃다 보면 정말 더 큰 경제를잃게 될까 걱정이다.
양재찬 경제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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