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규제풀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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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의 물가앙등은 유명하다.하루 반나절인 점심시간 직전에 반일당을 받았는데부인과 자식이 공장 입구에 대기했다가 한 가마니나 되는 반일치의 일당을 얼른 받아 손수레에 싣고는 부지런히 나가 식료품을 샀다고 한다.늦게 가면 그동안 값이 더 오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는 데도 돈을 썼다는 것은 이상한일이다.돈이 도대체 얼마나 편리한 물건이기에 이렇듯 그 가치가없어지는데도 썼던 것인가.역사적으로 본다면 월간 물가가 50%이상을 넘는 소위 초고속인플레이션(hyperi nflation)에서도 돈을 대체할 것은 없었다고 한다.그만큼 돈은 편리한 도구요,발명품이다.
한국은 그렇게도 유명한 부정부패에도 불구하고 성장하고 있으니그 비결은 무엇인가.그것은 달러를 버는 수출을 장려한 때문이었다.그 덕분에 이제는 매년 천억달러나 되는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수출은 위대한 한국경제의 기관차인 셈이다.
훌륭한 제도나 정책은 눈뜨고 보지 못할 부정부패도 거뜬히 소화해나갈 만큼 강력한 힘이 있는 것이다.돈과 수출은 위대한 제도며 정책이다.
은행도 마찬가지다.지난 수년동안 미국에서도 저축대부조합의 부실채권 때문에 혼쭐이 났었고 지금 일본에서는 부동산가격 폭락으로 말미암아 주택전문회사가 안고 있는 부실채권이 늘어나 큰 고민을 하고 있다.우리나라는 그보다 더 많은 부실을 안고 있지만,마치 돈을 가치가 떨어져도 쓰듯이 은행이 부실해도 우리는 은행에 간다.믿음이 있는 한 그것은 가능한 것이고 좋은 것이다.
은행은 돈이나 수출정책과 같이 좋은 제도다.
또 하나 슈퍼맨같은 정책이 경쟁제도가 아닌가 한다.경쟁에 맡겨두면 웬만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고 만다.한국의 금융비리가 그 예가 될 것이다.지난 30여년동안 지점장은 은행의 꽃이었다.시중금리보다 낮은 은행돈의 금리 덕분으로 대출사 례금이 가능했고 이걸 가지고 예금도 유치하고,인사청탁에도 관여하고,직원회식도 시켜주는등 유능한 지점장이 될 수 있었다.그러나 금리가 현실화된 이후 지점장의 활동비는 턱도 없이 모자라 자기 돈 꼬라박기 일쑤라고 한다.제도라는 게 그렇 게 무서운 것이다.금융부조리는 금리가 자유화 되는 만큼 사라질 것이다.
개발정책도 마찬가지다.북한을 비롯한 제3제국의 나라들은 수입대체산업을 육성하고 무역을 줄이고 자력갱생(自力更生)을 내세우며 중공업 우선정책을 채택했다.이들은 철저히 패배했다.그러나 경공업 위주로,무역을 우대하고,수출산업을 집중육성 하고,과감히기술과 자금을 차입(借入)한 아시아의 네마리 작은 용은 모두 다 성공했다.껌을 만들어 판 나라가 댐부터 건설한 나라를 이긴것이다.정책은 이기는 것이 있고 필연적으로 지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의 이러한 제도와 정책상의 우월성이 점점 사라져갈 것이다.중국.인도.인도네시아 등 많은 나라들이 쫓아오고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한국은 이제까지의 성장전략만 가지고는 안되게 됐다.위대한 정책개발을 계속해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위대한 화폐제도.금융제도.수출정책과 경쟁제도라는것도 녹슬고 구부러지고 막히지나 않았는지 살펴보고 손을 좀 보아야 할 때가 됐다.
정부의 규제를 풀어서 위대한 제도를 다시 살려야 한다.그리고경쟁여건을 더 조성하고 우리의 시장을 더 열어야 한다.또 어떤나라보다도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게 해야 한다.국내 기업이건 외국기업이건,큰 기업이건 작은 기업이 건 다같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그래서 돈이 들어오게 해야 한다.투자가 일어나게 해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돈이 밖으로 나가 결국 산업공동화(空洞化)로 경제가 쇠퇴하는 전철을 밟아서는 안될 것이다.
민병균 長銀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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