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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북한.나치 '非무장지대 불인정' 비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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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금으로부터 꼭 60년전인 1936년 3월 나치 독일은 베르사유조약과 로카르노조약이 1차대전을 마무리짓고 유럽에 평화를 확립하기 위한 수단들 가운데 하나로 설정한 비무장지대 라인란트를 전격 점령하고 비무장지대의 생명이 끝났음을 선 언했다.이렇게 두 조약을 폐기시키면서 나치 독일은 「유럽 평화를 보장하기위한 새로운 불가침협정의 체결」을 제의했다.
히틀러의 목표는 크게 보아 세가지였다.첫째가 국내의 지지기반을 넓혀 나치 정권을 안정화하는 것이었고,둘째가 영국.프랑스를비롯한 유럽 열강 사이의,특히 프랑스와 소련 사이의 우호협력관계를 깨뜨리려는 것이었다.
히틀러의 목표는 모두 성취됐다.우선 출범한 때로부터 20년밖에 되지 않았던 나치 정권은 이 대담한 도박을 통해 「복수」의염원에 불타던 독일 국민의 국수주의적 에네르기를 동원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동시에 유럽열강 내부의 갈등과 반목을 조성하는 데도 성공했다.히틀러가 예상했던대로 영국과 프랑스는 미온적으로 반응할 뿐이었고,이것은 소련으로 하여금 서유럽과의 제휴 노선을 버리고 나치 독일과 손잡는 길을 걷도록 만들었을 뿐만 아니 라 약소국들로 하여금 나치 독일에 복종하도록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의 비무장지대(DMZ)불인정 선언에 접하면서,특히 북한이다음 수순으로 비무장지대 가운데 북쪽지대를 무장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에 접하면서 필자는 나치 독일의 라인란트 비무장지대무효화 선언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됐다.
6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두 사건 사이에는 적어도 무효화 선언의 장본인들이 노리는 전략 목표에 놀라울 정도의 공통점들이 있다.첫째,공식적인 차원에서는 아니라 해도 사실상의 차원에서 출범 후 2년이 채 되지 않을뿐만 아니라 극심한 경제난을 비롯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 김정일(金正日)정권은 긴박한 군사적 긴장을 조성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자 한다.둘째,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관계국들의 저항 의지를 시험하고자 하며,셋째 한.미 동맹을 비롯한 한국의 관계 국들과의 우호협력을 갈등상황으로 유도하고자 한다.
이 모든 것들의 궁극적 목표는 지난 53년 체결된 이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그런대로 이바지해온 정전협정의 폐기에 있음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두 사건 사이에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음도 지적돼야 할것이다.무엇보다 한.미 두 나라의 대응이 단호하다는 점이다.
그뿐 아니라 정전협정의 또다른 당사국인 중국은 물론 러시아.
일본등 관계국들이 모두 정전협정이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나타내면서 북한의 행동을 비난하고 있다는 점이다.다시말해 강력한 저항의지를 공통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 이다.
이렇게 볼때 우리의 1차적 관심은 북한의 다음 수순으로 쏠리게 된다.한.미 두 나라의 단호한 대응을 바라보면서 행동을 거기서 멈출 것인지,아니면 비무장지대의 북쪽 지대에 군사시설을 구축할 것인지,또는 거기서 한 걸음 더나아가 군사 분계선 획정이 불분명한 서해5도 지역에 군사도발을 저지를 것인지 심각하게고려할 것이다.이 과정에서 필자는 적어도 다음 두가지에 주목하고자 한다.
첫째는 북한 통치구조 내부 결정과정에 강경파의 목소리가 점점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미국의 클린턴 참모진 안에서 클린턴의 대통령 재선 전략의 일환으로 북한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과도 화해의 길을 열었다는 「외교치적」을 보여주자는 계산이다. 이렇게 볼때 우리 정부는 물론 미국정부 역시 정전협정이준수될 수 있도록 단호히 대처해야 할 것이며 동시에 한국도 참여하는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체제」를 탄생시키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학준 단국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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