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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학교운영委 출발부터 '삐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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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말에 한번쯤 회의를 가져보지 않은 교육계 인사나 학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교육 행정이 우왕좌왕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학교운영위원회가 돌아가는 양상을 보면 또 한번「백년대계」의 허상(虛像)을 느끼게 한다.학교운영위원회는 교육부가 작년부터 교육 개혁의 일환으로 『학부모의 학교운영 참여를통해 소비자 중심의 교육자치를 실현하겠다』는 「 웅대한」 취지아래 추진해왔다.
교육부는 지난해 시범학교를 운영했고 올해는 이달 안에 전국 시 이상 지역의 초.중.고교에서 전면 실시한다고 발표했다.지방교육자치법엔 4월말까지 학교운영위를 구성하도록 규정돼 있다.그런데 이 일정이 초반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가 구성되기 위해선 먼저 15개 시.도 의회가 조례를 만들어야 하는데 당초 계획(3월말)대로 조례가 제정된 곳은 강원.대구.부산 등 3곳에 불과하다.
그 결과 조례가 없는 지역의 일부 학교들은 성급히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다 뒤늦게 중단하는 해프닝을 벌였고,교육부는 각 교육청에 『조례 제정 전까진 운영위원회를 만들지 말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결국 학교운영위는 5월중에나 본격 가동 될 전망이다.할 일은 태산인데 출발부터 지각 사태가 빚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교육부는 「정치 바람」탓으로 돌리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총선 지원 때문인지 시.도 의회 의원들이 조례 제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며 『총선 분위기가 어느 정도가라앉은 이달 중순에야 의회가 열려 조례가 제정될 것 같다』고말했다. 교육부의 처지도 이해는 가지만 교육부의 해명을 그대로받아들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다.
모두 같은 상황인데도 왜 어떤 의회는 조례를 만들고,어떤 곳은 만들지 않았을까.
혹시 「뛰는」교육청과 「앉아서 기다린」교육청의 차이가 아닐까. 모처럼 찾아온 교육 자율화가 「정치 바람」과 「앉아서 기다리는 행정」으로 인해 늦어지는 것같아 안타깝다.
더 근본적으로 볼때 현재 우리 지방교육자치제는 교육위원 선출방식이나 교육위원회의 위상,지방의회와 교육위원회의 관계 등 숱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으나 이해 당사자의 이견으로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학교운영위 조례 제정 늑장도 이런 문제점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교육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지방교육자치 실현을 위한 방안이 하루 빨리 마련되길 기대한다.
오대영 사회부 교육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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