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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125. 짠순이 세 모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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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을뿐더러 개성도 강해 영 딴판일 것 같은 우리 세 모녀.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두 딸 아이가 점점 나를 닮아간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사소한 일상용품에 상당히 인색하다는 것이다.

20대 초반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사실 걱정스러웠다. 물자가 귀하던 우리나라에서 뭐든 아껴 쓰는 것이 몸에 배었던 내게 뭐든 펑펑 쓰는 미국인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런 낭비가 있을까 안타깝기도 했다. 특히 레스토랑에서 쓰는 종이 냅킨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도톰해서 한번 쓰고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각 가정의 부엌에서 쓰는 종이 행주 역시 한번 쓰고 버릴 물건이 아닌 것 같았다. 화장용 티슈나 메모용 종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부엌에서 쓰는 종이 행주도 절대 한번 쓰고 버리는 법이 없다. 한번 사용한 뒤에도 싱크대 위나 바닥에 흘린 물이라도 훔치고 버리는 것이 습관이 됐다. 이면지를 모아 두었다가 사무실에 가져다주는 것은 물론이고 뒷면이 백지인 광고 전단지도 모아 두었다가 메모 용지로 사용한다. 종이 봉투나 비닐 봉투도 언젠가는 쓸 일을 있을 것 같아 늘 차곡차곡 모아둔다.

이런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두 딸의 성화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가난하지는 않은데 왜 이리 궁상이냐고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낡을 대로 낡아 그만 입을 때도 됐는데 무슨 미련이 남아 못 버리고 있는 옷을 딸들이 몰래 내다 버린 일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성화를 해대던 두 딸도 어느새 나의 절약 습관을 그대로 보고 배운 모양이다.

얼마 전 방콕에 갔을 때, 곶감을 가져간 일이 있다. 부피를 줄이려고 지퍼가 달린 비닐 팩에 가지런히 담아 가져가서는 도착하자마자 용기에 넣어 냉장고에 넣으라고 꺼내주었다. 부엌일을 도와주는 현지인 도우미가 비닐 백을 들고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빈 비닐 팩을 들고 나와 정아에게 뭐라고 묻는 것이었다.

정아는 당황하며 “아니요! 그건 그냥 버려도 돼요!” 하는 것이었다. 꽤 튼튼한 비닐 팩을 한번 쓰고 버리는 게 아까워 마른 음식을 넣었던 것은 닦아서 다시 쓰라고 했더니 현지인 도우미가 곶감 분이 잔뜩 묻은 비닐 팩도 잘 씻어 말려 다시 쓸까 하고 묻더라는 것이었다.

웃음을 참지 못하는 내게 정아는 “이것 봐요! 엄마가 우리를 이렇게 괴물로 키우셨잖아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개성이 강해도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에서 가장 닮은 세 사람은 우리 모녀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고 흐뭇해진다. 이런 점에서는 카밀라도 나와 제 언니를 빼닮았다.

패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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