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에디터칼럼

기름값 3000원쯤 어떨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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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도시의 교통대책은 뾰족한 답이 없다고들 한다. 도로와 주차장을 아무리 늘려도 충분하다는 소리를 듣기는 어렵다. 그래서 역발상이 나왔다. 자가용 이용자들을 오히려 불편하게 만드는 게 방법이라는 것이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승용차를 타는 것이 여러모로 손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 상황이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를 끌고 나왔더니 시간이 더 걸리고 돈(기름값+주차비+통행료)도 더 든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이론도 기대만큼 잘 먹히진 않았다. 차를 몰고 나온 사람마다 “길이 왜 이리 막히냐”며 옆 차 주인을 흘겨보곤 했다. 이 난제에 대한 답이 예상치 않은 곳에서 나왔다. 운전자들에게 충격을 줄 만한 가격이었다. L당 2000원에 이른 기름값이 해결사로 등장한 것이다.

 환경 문제가 모든 분야에서 으뜸가는 화두로 떠오른 지 꽤 됐다. 하지만 아무리 환경의 중요성을 역설해도 사람들은 잘 듣지 않는다. 본바탕이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필요성을 인식해도 자신이 귀찮고 불편하면 좀처럼 실천하지 않는 게 인간이다. 환경엔 별 관심이 없어도 기름값이 치솟으니 자가용 타는 사람이 줄고, 결과적으로 대기오염 방지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도덕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돈은 해낸다. 가격의 힘은 그만큼 강하다.

요즘 서울 공기는 1995년 공기 질 관측 이래 가장 좋다고 한다. 올 상반기 서울의 미세먼지 평균 농도는 m³당 62μg(마이크로그램, 1μg=100만분의 1g)으로 1년 전에 비해 10μg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동안 여러 가지 노력이 어울려 빚어낸 결과이겠지만 자동차 운행 감소도 한몫한 것이 분명하다. 이런 변화는 기름값 하나만으로도 서울의 교통·환경 문제를 상당 부분 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래서 엉뚱하게 이런 생각을 한번 해봤다. 가격을 더 올리는 것이다. L당 3000원쯤으로 고정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정유회사들의 배를 계속 불려줄 이유는 없다. 세금만 더 내도록 하는 방안이다. 가격을 3000원으로 묶은 상태에서 국제유가가 떨어지면 소비자들이 낼 세금은 더욱 늘어나는 구조다. 당연히 정부의 세금 주머니는 두둑해진다.

넓게 보면 이것도 수익자부담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비싼 휘발유를 넣고 자가용을 타는 사람은 쾌적하게 주행하는 혜택을 누리기 때문이다. 이익을 보는 사람에게 그만큼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교통량이 많은 시간에 남산터널을 통과하는 차에 통행료를 물리는 현행 제도가 그런 경우다. 터널을 이용하는 혜택, 다시 말해 시간과 기름을 절약하는 만큼 통행료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비싼 기름값의 문제는 자기 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생계에 타격을 입는 서민층이 될 것이다. 이런 계층엔 기름값을 깎아준다. 소득 정도에 따라 주유 쿠폰을 주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필요한 재원은 더 걷히는 세금으로 충당한다. 남는 세금으로는 대중교통을 더욱 편리하게 만드는 데 투자한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길은 잘 뚫리고, 에너지는 절약되고, 환경오염은 줄어들게 된다. 이른바 1석3조다.

물론 이런 생각에 바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주유 쿠폰은 받지 못하면서 무거운 세금을 내야 하는 시민들일 것이다. 그들은 이런 정책이 부자만을 위한 것이라고 비난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시대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한 환경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가격 충격을 즐기는 역발상도 필요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나라만큼 대도시의 대중교통시설이 잘 돼 있는 나라도 드물다. 자가용이 없어도 못 다닐 곳이 별로 없다. 마침 걷기 바람이 유행처럼 불고 있는데 여기에 편승하면 건강에도 좋을 일이다.

심상복 경제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