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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가게] 최불암씨 뚝섬 나눔장터에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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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 최불암씨가 어린이들과 함께 좌판에 앉아 머리핀을 팔고 있다. [박종근 기자]

올해 두 번째 '아름다운 나눔장터'가 지난 17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뚝섬유원지역 광장에서 열렸다. '중앙일보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가게'와 서울시가 주최하는 행사다. '국민 탤런트'이자 서울시 홍보대사인 최불암씨가 장터 참관기를 보내왔다. [편집자]

최불암입니다. 지난 토요일 한강시민공원 뚝섬유원지역 광장에 다녀왔습니다.

초록색 잔디와 파란 강물이 시원하게 어우러진 곳이데요. 지난달 이곳에서 '아름다운 나눔장터'가 처음 열렸는데 12만 안파가 몰리는 성황을 이뤘다기에 도대체 어떤 곳인지 궁금해하던 차였습니다. 마실가는 기분으로 강바람도 쐴 겸 찾아갔습니다.

오전 11시15분쯤 장터에 도착했습니다. 처음엔 무슨 난리가 난 줄 알았어요. 두 손에 두툼한 가방과 쇼핑백을 든 사람 수백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 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좌판을 벌일 시민들이었습니다. 오전 6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더군요.

장터가 서는 것을 보니 문득 어릴 적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 고향은 이북인데 저는 1940년 인천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부터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어릴 적 자주 가던 곳이 인천의 배다리 시장이란 곳이었습니다. 장에 갈 때면 어머니 손이나 치마만 꼭 잡고 다녔죠. 한 번은 다른 아주머니 치마를 어머니 것인 줄 알고 잡고 다니다가 어머니를 잃어버릴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없는 게 없고 왁자한 가운데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장터였습니다.

그런 장터를 서울 한복판에서 다시 보게 되다니…. 장터로 들어가는 입구마다 파란색 빈 상자가 있었습니다. 쓸만하지만 안쓰는 물건을 가져와 입장료처럼 넣는 곳이었습니다. "어이쿠, 쓸 만한 주전자를 챙겨 놓았는데 깜빡 현관에 두고 왔네. 파하~"하고 웃었더니 빨간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 아가씨도 환하게 웃어주더군요.

장터는 공식 개장시간인 낮 12시 이전부터 시끌벅적했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과 젊은 엄마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인형이나 신발.옷가지를 갖고나와 팔더군요.

한 엄마에게 "왜 이렇게 물건이 없느냐"고 묻자 "한 시간도 안돼 다 팔렸다"고 하더군요.

아이들 물건은 해져서 버리는 게 아니라 작아서 못쓰게 되지 않습니까. 버리긴 아깝고 딱히 줄 사람도 없는 멀쩡한 물건을 싸게 파니 빨리 팔린다네요. 옆에 있던 젊은 엄마는 "마음에 드는 아기 옷을 100원 주고 샀다"고 좋아하더군요. 허허 100원이랍니다.

다른 엄마는 "지난달에도 나와 4만원어치를 팔아 1만원 기부하고 아이 통장에 3만원 넣어줬다"면서 "아이가 자기 물건을 정리하고 팔 물건을 진열하는 걸 아주 재미있어 한다"고 하더군요. 어릴 때부터 남을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가르치는 가족 모습이 얼마나 예뻐 보이던지….

처음 '아름다운 나눔장터'얘기를 들었을 때 두 가지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물건을 나눠 쓰는 나눔의 정신이 아름답고, 두번째는 판매 수익금 일부를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한다는 마음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런 정신과 마음이 전국으로 퍼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직접 물건도 팔아보았습니다. 제가 큰 목소리로 외치니 "양촌리 김회장님 오셨다"면서 대번에 사람들이 모이데요. "작은 머리핀이 100원씩이요. 애엄마, 큰 건 2000원이래. 여기 보석이 박혔잖수. 하나 사슈. 파하~"

외국에는 그리 많이 나가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갈 때마다 벼룩시장은 꼭 찾아가보는 편입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제일 확실하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깔끔하게 정리해 파는 독일도 좋았고, 동네 노인들이 정기적으로 물건을 정리한다는 일본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장터를 둘러보면서 '아름다운 나눔장터'야말로 서울을, 아니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명소가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나눔의 정신이 뿌리내리는 현장이야말로 한국인의 정(情)을 알리기에 더없이 좋은 곳 아닐까요. 관광명승지나 쇼핑센터보다 말입니다.

장보기를 끝내고 주차장으로 가다가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와 장터로 향하는 인파를 보았습니다. 화창한 날씨에 일부러 이곳을 찾은 사람들입니다. 꼭 싼 물건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훈훈한 '정'을 느끼러 온 사람들이 아니었을까요.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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